2024년 5월 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21) 노동의 질과 인간의 존엄성

‘품위’ 있는 노동현실을 위하여
노동은 창조사업에 동참하고 자기완성 이뤄과는 과정
인간 존엄성 훼손으로 이어지는 교용불안·비정규직 문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기발한 상품과 정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직장에서는 효율을 내세운 사업·구조 조정과 이에 따른 인원 감축, 부단한 기술혁신과 적응에 대한 요구들이 끝간데 없이 폭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낯선 단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아르바이트’, ‘임시직’, ‘기간제’,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오히려 우리 삶을 대변해주기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무한 경쟁’으로 표상되는 우리 시대는 끊임없이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는 삶의 질,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훼손시키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사고파는 노동시장에서 고용주들이 유연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노동의 질은 계속 추락하기만 하는 현실입니다. 이는 경제성장률과 자살률과의 깊은 상관관계를 통해서도 쉽게 드러납니다.

실제 우리나라 사회경제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40대 연령층이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학자들을 비롯한 경제학자, 의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의 원인으로 경제적 요인을 꼽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가족기능이나 정서적·사회적 안전망과 보호막이 약화되어 노동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3가 업무과다, 조직 부적응 등 직업성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3명 중 1명은 심인성(心因性) 질환을 경험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신체적, 정신적 소진(burn out)이 올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가 직장에서나 가정 등에서 적절히 치유되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부정적이고 병리적 변화가 생깁니다. 이러한 변화는 불안감, 긴장감, 우울증, 집중력 저하 등을 불러일으켜 개인뿐 아니라, 연쇄적으로 가정, 직장과 사회 공동체의 ‘삶의 질’까지 떨어뜨립니다.

노동이 인간에게 좋은 것은 노동을 통해 자연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기완성을 이뤄 더욱더 사람냄새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현실은 단순히 차별적인 저임금과 심각한 고용불안 등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뿌리째 뒤흔들며 결국 인간 존엄성 훼손으로 이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다시 사회 전반으로 빈곤을 확대시키고 양극화를 구조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집니다.

교회는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은 물론 노동 조건과 공동선을 고려하여 본인과 그 가족의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사목헌장 67항)고 가르칩니다. ‘품위’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노동 현실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나누는 마음을 가질 때, 하느님나라를 세우는 발걸음을 훨씬 가볍게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기사원문보기]
기톨릭신문  2013-12-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4

1사무 15장 22절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