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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27)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

잃은 양 한 마리 찾아 떠나는 마음
공존·공생·상생의 철학 담고 있는 경제민주화
주님의 ‘공정’ 실천해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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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여와 야를 불문하고,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어 모두가 시대정신(Zeitgeist)이나 되는 양 경제민주화를 외친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지금은 그런 목소리를 찾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여전히 경제민주화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유효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각종 경제 수치가 올라가고 있음에도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세상살이의 경쟁은 격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돼 삶의 질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산층은 사라지고 소수의 부유층과 절대다수의 빈곤층으로 사회가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고 또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게 된 연유를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는, 인간이 배제된 채 경제적 수치와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온 우리 시대의 그림자인 경제생태계의 불공정을 하느님의 질서로 되돌리기 위한 시금석이자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장 실패의 원인을 함께 찾고 한데 힘을 모아 극복해나가기 위한 공존· 공생· 상생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사상 최대의 빈부격차, 10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비정규직 양산과 청년실업, 전세대란, 과중한 사교육비와 출산율 저하, 경쟁 위주의 교육 시장화, 유통재벌의 골목시장 침탈, 부문간·지역간의 발전격차 등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불공정이 난무하는 경제 현실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건전한 사회 발전을 위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욱 담보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경제민주화는 지속가능한 건강한 사회를 위한 선택이자 투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하느님의 공정이 실현되는 경제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업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명하고 완전하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공정(公正)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 1-16)에서 볼 수 있듯 하느님의 공정은 뒤처지고 소외된 이들마저 돌아보고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더 걱정하며 찾으시는 것이 하느님의 공정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분의 계산법은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길, 줌으로써 얻는 길, 낮아짐으로써 높아지는 길, 모욕을 당하고 손해를 봄으로써 영광을 얻는 길, 죽음으로써 살게 되는 길입니다.

주님에게 중요한 것은 일의 능률이나 세상의 잣대로 가늠하는 효율이 아니라, 당신 자신께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사람 그 자체입니다. 가장이 받은 품삯으로 사들고 갈 빵 한 조각을 종일 기다리며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을 가족들에게 주님의 마음은 가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일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용기있게 주님의 공정을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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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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