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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 ‘자유’ 뒤에 숨어 횡포부리는 모순적 얼굴

가난하고 약한이들 더욱 밀어내는 신자유주의/ 정의로운 식별력 지니고 불의에 맞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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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얼핏 보면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부여하신 천부적이며 고귀한 선물인‘자유’를 내세우고 있어서 거부감 없이 선뜻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움(新)’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으니 마음이 움직이기 쉬운 대상 내지 개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자기모순적인 얼굴들을 적잖게 보이고 있어 교회는 이런 모습들에 신중하고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주창하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축적된 자본을 배경으로 시장에서 독과점적 횡포를 행사하고 있는 힘센 자신들의 이익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인 약자들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거나 완전한 시장경쟁을 회피하여, 오히려 자유 시장 경제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자본을 지닌 약자나 가난한 이들은 갈수록 경쟁시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현상이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납니다.

비근한 예로 동네마다 하나둘씩 있는 소규모의 슈퍼마켓을 둘러싼 현실을 잠시 살펴봅시다. 자유경쟁을 내세워 어느 날 갑자기 대형마트나 대형슈퍼마켓들이 동네 곳곳에 들어서면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네 상권(商圈)까지 싹쓸이하는 통에 동네 구멍가게나 소규모 슈퍼들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금년 7월 1일부로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었지만, 이 협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입점제한 조치가 명시되지 않아 이런 상태로 간다면 머지않아 우리 이웃 가운데 소매업을 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출중심의 대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점유율을 높이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경이로운 기록적인 고수익을 거두는 상황에서도 그 납품업체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결과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시장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조차 사상적으로나 이념적인 혼란을 부추기며 ‘자유’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끌어가고 있는 게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현실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끊임없이 경쟁의 대열에서 밀어내고, 나아가 두 번 다시 재기하기 힘든 나락에 빠뜨려 헤어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교회는 계속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표명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정의로운 식별력과 태도를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97년 열린 아메리카 특별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을 발표하면서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관련해,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윤추구와 시장 경제는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더 소외되게 만든다고 강력한 어조로 경고한 바 있습니다.

교황은 아메리카 대륙, 특히 중남미 지역의 가난과 사회적 고통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그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경제적 세계화를 꼽았습니다. 아울러 낙태, 안락사, 사형제도 등 우리 사회에 죽음을 부추기는 문화의 그늘을 짙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준엄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한 나라의 외채 문제, 환경 오염, 인종 차별, 무기와 마약 밀매, 폭력과 테러 등 신자유주의가 낳는 불의에 대해 맞서 대항하고 싸울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수차례에 걸쳐 신자유주의 흐름에 의해 세계화된 경제가 사회적 정의의 원칙에 따라 철저한 감시와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황이 가난한 이들뿐만 아니라,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새롭게 복음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와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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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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