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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5) 국가마저 ‘쇼핑’하는 글로벌 기업의 권력

효율만 따져 무한경쟁·적자생존 당연시하는 현실/ 소외된 이들 위한 배려는 이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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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에게 유용한 재화, 생산과 소비를‘자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활기를 불어넣어 인류를 이롭게 하는 면이 있는가 하면, 그 자유의 힘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온갖 부조리와 불의를 낳기도 합니다.

인류에게 밝은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신자유주의는 해를 거듭할수록 온갖 악취를 풍기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해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개인과 사회의 편리를 위해 만든 옷이 오히려 몸통을 위험에 부쳐 옥죄어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몸이 자라서 옷이 몸에 맞지 않게 되면 그 옷을 바꾸거나 벗어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해 몸에 막대한 해악을 끼칩니다.

어느새 신자유주의가 시장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되면서‘효율성’이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면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동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와 같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모든 영역에서 효율성만 드러나고 다른 인간적 가치들이 사라지면서 사회는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구조가 당연한 듯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나 사회안전망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는 점차 이차적, 부차적인 부분으로 밀려나면서 갈수록 소외되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 게 눈앞의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나 국가는 능력 있는 이가 대접 받는 ‘능력 위주의 사회’ 혹은 승자만 살아남는‘승자독식사회’로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세상을 만드신 주님이 바라시는 모습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죄의 구조’를 심각한 현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내는 비극적인 사태로 진단한 바 있습니다. 이 죄의 구조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심과 사회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세상에 죄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죄의 구조부터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세계 단일시장(Global Market) 대 국지적 정부(Parochial Government)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가시화되는 게 기업과 국가의 위상 변화입니다. 즉, 민간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이 국가 위에 올라서게 되어 국가보다 힘이 더 세지는 경우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계화로 인해 경제와 시장이 한 권역, 단일한 지구촌이 되면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지만,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국가권력은 여전히 ‘지역적’ 또는 ‘국지적’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시장과 시장을 움직이는 기업은 세계 전체를 단위로 해 힘이 커졌는데, 기업을 상대로 규제를 하고 세금을 매기는 국가나 정부는 여전히 동네 내지 마을 단위라는 얘기입니다. 이러다 보니 초국적 기업들이 국가마저‘쇼핑’하고 다니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가 도처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당신네 나라는 세금을 얼마나 깎아줄 수 있나.’, ‘당신들은 어떤 규제를 풀어 줄 수 있는가’, ‘옆 나라는 우리에게 이런 편의와 이득을 주는데, 당신네 나라는…’

방송이나 신문을 살펴보면 국가와 이런 식의 흥정을 하며 쇼핑을 하고 다니는 국제 기업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금력(金力)이 최고 권력이 된 신자유주의 치하에서 글로벌 기업 CEO들은 주요 국가의 국가원수와 동격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국가원수들이 세일즈를 위해 글로벌 기업들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화되고 있으니 기업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국가권력 위에 올라서 버린 오늘의 세상,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글로벌 마켓(Global Market)의 씁쓸한 판도와 영역 위에서 가난한 이들은 갈수록 소외되고 돌파구마저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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