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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9) 이상한 모습의 가난

여러분은 어떤 가난을 살고 있습니까?/ 가난의 참 의미와 정신 잃는 것이 문제/ 재물과 재능 좋은 일에 잘 쓸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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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富)나 자산(資産)이 있는데도 가난하다.’

예전 같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법한 이런 말이 근래에는 일상적이거나 상식으로까지 통하는 현실과 대면하면서 우리는 가난과 부라는 개념이 모호해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가난이라는 개념도 그 시대의 사회 현실과 경제를 둘러싼 다양한 양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는 집이 있지만 오히려 집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이라는 드러난 자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임에도 곤경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식교육으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리타이어 푸어(retire poor)’, 곧 은퇴라는 말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리빙 푸어(Living Poor)’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계 소득이 줄어들었는데, 육아 교육 등에 갈수록 돈이 많이 들어 이러저런 대출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의 빈곤’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된 ‘잡 푸어(job poor)’는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돈을 많이 지출하는 경우입니다. 취업을 위해 이른바 스펙을 쌓는 비용까지 포함시킨다면 사실 오늘날의 ‘잡 푸어’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비 푸어(baby poor)’라는 용어는 출산으로 인한 양육비, 교육비 등 아이들을 위해 지출되는 돈들로 인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후 대비는커녕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빈곤하게 살아가게 되며, 그 가난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줘야 하는 현재의 우리나라 젊은 부부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부각되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워킹 푸어(working poor)’가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직장은 있지만 날로 확산되는 비정규직과 저임금 등으로 인해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워킹 푸어’는 경제난과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전체가구를 대상으로 측정한 평균가구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해당됩니다. 이들 ‘워킹 푸어’는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요즘 청년층들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열악한 소득으로 인해 ‘워킹 푸어’로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취업난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심한 청년층(20~30세)의 임금 수준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취업 대란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주로 저임금 산업에 종사하는 탓입니다.

이처럼 가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어들이 많은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여러 가지 양상의 가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난으로 인한 문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가난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강조해온 가난의 정신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재물과 재능의 마지막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인간은 관리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사람은 잠시 관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 재물과 재능을 좋은 일에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이기적 욕망과 교만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해 이런 과도한 욕심과 교만이 숱한 죄악을 낳아왔음을 보아왔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곤경에 빠져 신음하는 사회와 이웃 형제를 도우며 사는 가난의 정신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힘든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가난을 살고 있습니까?’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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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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