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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벌겋게 단 쇠를 어떻게 움켜쥐나

김원철 바오로(보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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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이따금 주인공 못지않게 매력적인 주변 인물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에 나오는 토르시의 본당 신부가 그런 사람이다.

토르시의 신부는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다. 시골 성당에 부임한 젊은 신부에게 툭툭 던지는 투박한 말 속에 연륜과 실패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인간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또한 대단하다. 그런 그가 나약한 주인공 신부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하는 말이 ‘죽비’ 내리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느님의 말씀! 그건 벌겋게 단 쇠일세. 그런데 그 진리를 가르치는 자네는 손으로 덥석 움켜쥐지 않고 화상을 입을까 봐 부젓가락으로 그걸 집으려 들 텐가?”

지적 허영에 빠지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꽉 움켜쥐고 삶으로 증거하라는 채찍질이다. 사제도 인간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지식을 갖고 우쭐댈 수 있다. 그 우월감이 때로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또 성과 없이 실망과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체념하게 된다. 체념이 언덕을 이룰 만큼 쌓이면 나태에 빠진다. 나태하면 ‘바로 곁에 있는 악’(로마 7,21)에 굴복당할 위험이 크다.

토르시본당 신부의 충고는 이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측은한 잠보’가 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젊은 신부는 곧 교회는 군수품 보급이 불가능한 미지의 땅을 행군하는 군대처럼 시간을 뚫고 전진하는 존재라고 확신한다.

작가의 비유가 무릎을 ‘탁’ 칠만큼 절묘하다. 후방 지원이 끊기고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행군하는 군대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종교가 사회 주변부로 점점 밀려나고, 향후 마주치게 될 도전의 규모도 가늠하기 힘든 불리한 시간을 뚫고 나아가는 교회 사정도 다르지 않다.

상황이 이런지라 “벌겋게 단 쇠를 움켜쥐라”는 원로 신부의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받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충고다. 문제는 벌겋게 단 쇠를 무슨 배짱으로 움켜쥐는가 하는 것이다. 손으로 쥐면 화상을 입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적당히 떨어져서 망설이는 것은 뜨뜻미지근한 신앙이다. 부젓가락으로 집는 것은 회색 실용주의다.

답은 정해져 있다. 맨손으로 움켜쥐는 방법밖에 없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 거리에서는 빈곤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불의가 판을 치고 있다. 무수한 생명이 힘의 논리에 짓눌려 신음한다. 시대 흐름과 여론을 의식해 어정쩡하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외쳐야 한다.

교회가 안락의 성채(城砦)에 머물면 타락을 면할 수 없다. 악은 실로 영악하다. 악의 목적은 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순진한 생각이다. 악은 선을 악으로 ‘변질’ 시키는 것을 승리라고 여긴다. 나태의 옷을 벗어 던지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복음의 기쁨」 49항)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순교자 성월이 시작됐다. 순교자들이야말로 벌겋게 단 쇠를 움켜쥔 이들이다. 우리가 무엇을 반복해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놓기 위해서다. 피의 순교를 녹색 순교로 이어가야 한다. 일상에서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 흘리는 게 녹색 순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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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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