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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어른은 진보다]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입니다

김경집 바오로(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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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든다. 1997년 IMF 사태 때 유가는 세 배로 뛰고 부동산 가치는 반 토막 이하로 추락했다.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살림은 바닥났다. 그 후유증은 20년도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다. 빈부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외려 더 커졌다. 지금 우리가 감내하고 있는 양극화가 극대화된 배경의 하나였다.

코로나19는 생명 자체를 위협하고 사회적 삶을 축소시키는 위기 상황이다. 당장은 감염되지 않고 생존하는 게 급선무지만 위축된 경제와 살림살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긴급재난기금을 지불할 모양이다.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를 기대하면서. 물론 어떤 부자들은 거기에 더 많은 돈 얹어 기부하기도 할 것이다. 사회적 연대와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좋은 사례가 되면 뿌듯할 것이다.

국가의 재정 건전성 운운하는 관료들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빚을 지지 않으면 국민이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 위기 상황이 약육강식의 생존 투쟁으로 내몰게 된다는 점을 간과한다. 자신들은 실직하거나 영업이 안 되어 수입이 급감할 일이 없어서 그럴까?

적어도 이 위기 상황이 또다시 양극화를 가속시키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가뜩이나 전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코로나에 쉽게 감염되고 죽는 반면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형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부는 한쪽으로 더 쏠린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무너진다. 전염병에서 살아남더라도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지옥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긴급재난기금이 모두에게 신속하게 분배되는 일은 시급하다. 그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수령을 포기하거나 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연대할 수 있다.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바로 나이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다. 노동자가 없는 자본의 증산도 없다. 사회적 관계는 일방적이거나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 긴밀하게 맞물린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 쪽에게 일방적 피해를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이다.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모범적인 방역시스템을 과시했다.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사스와 메르스 사태 등을 통해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성찰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일을 겪고도 또다시 나 몰라라 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방역 시스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패에서 배운 성찰은 그래서 비싸지만 값지다.

우리의 선제적 대응의 결과물인 진단키트나 촘촘한 방역방식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불어 우리의 자존심도 커지고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로 한 나라를 평가하는 무람한 태도가 얼마나 몰지각한 일인지 우리는 목격했다. 차제에 우리의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다.

방역과 예방에서 보여준 우리의 우수성을 넘어 우리의 인격적 수준과 사회적 연대의 견고함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1997년 체제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 값을 20년 넘게 치르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에서 그걸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연대하고 협력해야 할 당위를 도출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가 기회가 된다.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는 절박감과 연대의식이 더욱 절실한 시기다.







△서강대 대학원 철학 전공 △前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前 가톨릭대 인성교육센터 교수 △한국출판평론상 수상 △저서 「어른은 진보다」,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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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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