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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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조카가 열어주는 아침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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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인 소녀가 찍은 사진.



거의 매일 아침 띠리링 하는 전화음이 울린다. 이른 오전 시간이니 급한 용무이거나 내 하는 일들에 대한 문의일 법 하지만 그게 아니다.

“삼촌! 지금 뭐 해요? 나 안 보고 싶어요?”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이전과 똑같은 질문이 청량한 목소리에 담겨 들려온다. 거의 7, 8년이나 된 오래된 이 아침의 일상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뒤를 이은 질문 또한 늘 똑같은 패턴이다.

“우리 언제 만나요? 보고 싶어요. 삼촌은 우리 안 보고 싶어요?”

만날 약속을 재촉한 뒤 뚝딱 전화를 끊는 것도 음성 속 주인공의 몫이다. 이에 응대하는 나의 답변도 거의 비슷하다. 실제 어린 조카를 대하듯 최대한 부드러우면서도 기분 좋게 말을 건넨다.

“그럼 그러엄! 보고 싶지~. 우리 언제 만날까? 그래. 그러자. 잘 지내렴!”

매일같이 오는 이 전화의 주인공은 이제 서른 살이 다 된 ‘소녀’다. 한 달에 두세 번 같은 내용의 전화를 걸어오는 또 다른 두어 명의 ‘소년’들도 더 있다. 함께 인연을 맺은 이들 모두 나를 삼촌이라 부른 지 오래다.

신체적 나이는 적지 않지만, 정서적 나이는 아직 예닐곱 살에 머문 작고 귀여운 ‘아이’들인 그들은 모두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오래전 서울에 소재한 대학 의뢰로 진행한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맺어진 우리의 인연은 프로그램이 멈춘 이후에도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늘상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의 이 전화 속 대화 때문이지 싶다.

시간의 흐름 사이 내내 자기 심연에서 작동하는 ‘보고 싶다’라는 감정에 지속적으로 충실하고 있는 우리 ‘조카’ 녀석들이 여간 대견하지 않다. 이 아이들의 행동은 무심히 반복되는 발달장애인의 증상으로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대단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 거의 없다. 아이들의 몸짓이 빚은 언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장애인이라는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함께 세상을 느끼는 시간을 나눈 정도다.

맨발로 낙엽 가득한 숲을 거닐기도 하고, 눈을 감은 채 새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색색의 꽃들과 초록빛 잎새들을 향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진 한 컷 찍겠다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난장을 바라보는 일은 지금 돌이켜 봐도 생생하니 흥에 겹다. 아!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너무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적도 아주 많다.

내일 아침에도 다시 전화음이 울릴까? 종종 우리의 아침 일상이 울리지 않는 날이면 은근 서운하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삼촌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만난 조카들에게 가만히 고개를 숙여본다.

▲ 임종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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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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