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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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이스라엘 ‘눈물의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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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70년 만에 처음이야.”

“허리 수술하고 1년간 재활훈련 했어요. 그동안 앞만 보고 일만 했는데 큰 수술을 하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오게 되었지요.”

“코로나 때부터 적금을 부었어요.”

또 누군가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안고 성지순례, 그 거룩한 부르심에 초대되었다. 작년 12월에 기획하고 올해 1월에 순례단 30명을 모집해 일찌감치 예약을 해놓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도와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이스라엘로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12시간 긴 비행 끝에 텔아비브에 도착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갈릴래아로 이동하여 순조롭게 순례에 나섰는데, 가자지구에서 로켓 발사와 인질극이 일어났고 이스라엘 정부는 전쟁을 선포하였다.

갈릴래아로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에 감시 비행인 듯한 비행기 소리에 잠을 설쳤다.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그곳에 새벽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서 공포에 떨며 아침을 맞았다. 전쟁 선포 후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는 듯했다. 이동 중 차창 밖에는 예비군이 비상 소집되는 게 보였고 탱크부대가 가득했다. 장갑차가 이동하는 것도 보았다. 그날 우리 순례팀은 긴급회의 끝에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특별기에는 좌석이 부족해 18명만 먼저 탈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이십 분 안에 명단을 빨리 제출해야 해서 동행한 신부님이 고심하여 연장자와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부터 선정하고 나니 12명이 남았다. 우리는 ‘열두 제자’라 불렀고 다음 비행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벤구리온 공항에서 우린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떠나는 이들이나 남은 이들 모두 가슴 한편이 아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남은 우리는 제일 중요한 성지가 있는 곳 그래서 제일 안전하다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 중간층에 있는 방공호도 만약을 대비해 미리 알아두었다. 이스라엘에는 공공기관은 물론 집마다 방공호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지에는 많은 순례객들이 떠나서인지 한적했고 학교도 문을 닫아 도로 사정도 원활하였다. 국경이 언제 닫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골고타 언덕을 오르며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가다가 예수님이 넘어진 곳, 그 벽에 손도 대어보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간절한 기도를 하며 예수님 무덤에 다다랐다. 평소 같았으면 두 시간을 기다려서 몇 초간만 겨우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몇몇 순례객들과 우리뿐이어서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가이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드론 공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참 후에야 기계 작동 오류로 밝혀졌지만 우린 서둘러 짐을 싸야 했고, 국경이 닫히기 전 이스라엘을 빠져나가야 했다. 육로로 버스를 타고 요르단으로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일정이었다. 버스로 두 시간을 달리는 동안 저 멀리 요르단강을 건너고 유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일출이 남아공의 희망봉처럼 솟아올랐다. 두바이로 가기 전 하루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어 모세가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는 느보산에 올랐다. 언제 다시 그 땅을 밟아볼까…. 우리도 모세처럼 오래도록 그곳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다 따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손길이 늘 함께하는 귀한 성지순례였다.

통곡의 벽에서 책가방보다 몇 배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멘 이스라엘 여군, BTS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앳된 얼굴의 환한 미소와 요르단에서 어린 소년이 우리가 탄 버스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평화를 떠올려 본다. 부디, 총성이 멈추고 평화가 있기를, 이스라엘 성지가 파괴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아멘!
원윤자(율리아나·수원교구 갈곶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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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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