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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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우리가 고통을 다룰 때

이지혜 보나(신문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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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환하게 웃지는 마시고 두 분이 그냥 편안하게 대화를 나눠주시겠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언제셨나요?”

고통의 그림만 건져 올린 채 그 자리를 떠난다. 기쁨과 행복의 언어는 가볍게 날려보내고, 슬픔과 아픔의 언어를 채집한다. 이혼과 불륜, 도박과 사기, 우울증 등으로 얼룩진 삶의 굴곡을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취재 수첩에 눈물이 떨어져 글씨가 번지고,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성금 전달식 날에는 함께 울었다.

이혼 후 세 아이를 양육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아이들을 항상 먹여야 하는 걱정에 아버지의 한숨은 깊었지만, 우리는 모두 슬픔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그는 평정심을 잘 유지했다.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은 듯 무덤덤하기까지 했다. 집 안을 살폈다. 사진으로 남길 공간을 찾기 위해. 말끔하고 깨끗한 곳보다는 낡고 누추해 보이는 각도와 구도를 찾는다. 약 봉투와 컵라면이 쌓인 곳에 눈길이 머문다.

돈이 되는 고통 앞에서 열심히 가난과 고통을 수집한다. 결국에는 돈이 좀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기에 고통의 깊이를 묻는 데 망설임이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지갑을 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아픔에만 도움을 건넨다. 타인의 지갑을 여는 문장을 잘 구사할수록 나는 타인의 고통을 담아내는 일이 점점 미숙해진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자주 물었지만, 그만큼 타인의 고통에 눈 밝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유명 영화배우가 세상을 등졌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세상에 남긴 말, 고뇌와 번민이 담긴 말, 고통의 대화들이 녹음되어 온라인을 떠다닌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의 고통을 구경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조심스럽다. 그들의 고통을 잘 아는 것처럼 알은체하는 일이 그들 고통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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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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