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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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아버지의 선물(김혜연 도르가, (주)하나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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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좋은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지구 곳곳의 이상기후 현상들, 극으로 갈라지는 사람들, 비극적인 전쟁들. 그래서 화로 날카로워진 사람들의 말들. 심각한 문제들이 많아 한 가지 문제에 ‘모두의 힘을 모아 해결합시다!’하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세상입니다. 몸이, 마음이 아픈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먼 곳 이야기할 것도 없이 제 자신의 어둠이 제 피곤한 몸과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려던 어느 날, 하얀 눈이 두두두두 선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큰 기대 없이 나간 산책길에 소복이 쌓여가기 시작하는 눈을 맞았습니다. 집 앞 공원 여기저기 안 밟힌 눈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눈길 따라 들어간 공원 언덕에서는 한 꼬마가 아빠가 끌어주는 눈썰매를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꼬마의 조그만 눈썰매를 부러운 듯 바라보다가 윗도리를 바지 안쪽으로 잘 쑤셔 넣고 점퍼 지퍼를 목까지 추며 올리고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언덕에서 김밥 말듯이 때굴때굴 굴러 내려갑니다. 처음엔 곱게 누워 굴려달라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굴러가는데 저쪽 아래까지 잘도 굴러갑니다. 눈을 맞으며 공처럼 굴러가는 아이를 쫓아가는 기분이 너무 유쾌했습니다. 머릿속 가득하던 생각들이 모두 하얀 눈으로 덮이며 온전히 맑아지는 기분.

저는 마음의 상처를 예수님 앞에 쏟아내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위로가 큰 위안이 되어 한동안 괜찮았는데, 어느 날 기도 중에 울컥 또 그 상처의 기억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말씀드렸지요. 아직도 힘들다고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가만히 슬픈 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꼭 맞는 것들로 너를 위해 준비하고 기뻐할 너를 보려 설렜는데, 너는 자꾸 슬퍼만 하는구나. 나를 좀 봐줄래?”

그 마음을 못 알아보는 저를 보며 슬퍼하시는 예수님 마음에 아차 싶었습니다. 그 순간 그 상처의 상황들에 예수님 사랑의 계획이 스며계셨음을 깨닫고 나니 이미 그것은 저에게 더이상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는 마음에 어둠이 오려 할 때 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둠이 예수님의 선물을 알아보기 전에 더 빨리 다가오는 시점이 있습니다. 제 시선이 세상의 일에 너무 골몰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게 요즘의 저였습니다.

그간 일이 바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못 보내는 것이 마음 한켠 아쉽고 미안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산책하던 공원에서 먼 길 운전해 가야 하는 스키장에서보다도 더 가볍게 눈을 즐기며 놀 수 있었던 그 순간, 이건 정말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제대로 알아들으라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보내주신 선물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나무에 쌓인 눈도, 눈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도, 쫑쫑쫑 눈길을 찍으며 날아가는 새들도, 눈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미소도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감사하며 충분히 놀았습니다. 그 눈은 하루 지나지 않아 모두 녹았습니다. 그런데 눈 녹아 드러난 복잡한 세상이 걱정스럽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으로 선물을 준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덕분입니다. 우리가 기필코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의 마음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 한 해가 되길 함께 소망합니다.



김혜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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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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