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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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김혜연 도르가, (주)하나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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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고, 세탁 때 옷의 바느질을 뜯어서 빤 뒤 다시 옷을 지었던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 고단함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클릭 몇 번에 국경 너머 신상품이 내 문 앞에 배달되고, 버튼 한 번에 빨래가 건조까지 되어있는 지금의 세상은 신세계입니다.

자급자족해서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의 시작과 끝을 알아야만 했던 때를 지나 급속한 산업화로 개개인의 역할이 세분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 외에는 눈 돌리지 않고 살아도 됩니다. 더 좋은 발명품들이 점점 더 빨리 출시되고 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사용하는 물건과 각종 서비스의 출생부터 소멸까지의 전 과정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는 몇 해 전 미국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대거 처분해야 했습니다. 야드세일(Yard Sale, 쓰지 않는 물품을 집 마당에서 판매하는 행위)을 열어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들을 이웃에게 아주 저렴하게 팔거나 무료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옷은 큰 봉지 가득 담는 대로 5불에 팔았습니다. 친구 아이디어였는데, 그렇게 파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사 가시는 분들 말씀이 입고 더러워진 옷을 빨아 입는 것보다 야드세일에서 싸게 사다가 한 번씩 입고 버리는 게 ‘경제적’이라고 했습니다.

옷에 얼룩이 묻으면 어떻게든 깨끗하게 빨아서 입으려 했던 저에게는 다소 새로운 접근이었습니다. 버리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반품한 물건을 새것으로 처리해서 다시 파는 것보다 폐기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경제적’이라는 말은 제품 원가에 더해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비용에 그 제품의 생산을 위해 원료 채취 시점부터 발생하는 환경에 끼친 영향이나 착취된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더 나아가 그 제품이 폐기되기 전에 저개발국가에 상품으로 보내졌다가 선택되지 못하고 폐기물 처리시설도 없는 곳에서 불태워져 유해물질을 뿜으며 누군가의 주거환경을 오염시킬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제품의 전 과정을 고려하여 제품의 비용을 다시 계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분업화된 시대, 우리가 검색했던 정보만 추천되는 필터버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전 과정을 따져보면 불편해지는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계속 잘 모르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부분만 보며 전 과정을 보지 못하고 그 영향에 관심 없이 사는 것은 내가 승객으로 탄 차가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의 생성에서, 소멸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으로 우리의 지구는 급격히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가 이 지구와 공생할 수 있다는 희망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전 과정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지구와 공생의 길을 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그 누군가가 지구 자원을 과도하게 고갈시키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도 하지 못하고 소비하며, 그 사업에 힘을 실어주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외치는 환경에 좋다는 길을 명확한 근거 없이 따라가다가 ‘이 길이 아니었는데’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김혜연 도르가, (주)하나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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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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