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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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연대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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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가게나 음식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한국의 대도시에서 흔한 일이다. 장사가 잘 되어도 가게나 골목이 유명해지면 수십 년 지켜온 곳에서 다른 곳으로 밀려난다. 낙후되거나 저소득층, 영세 기업이 주로 있던 지역이 개발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계속되고 서울에는 ‘눈부신 폐허’(송경동)가 늘어난다.

이종건씨는 그런 ‘쫓겨남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이웃들과 연대해 온 ‘옥바라지선교센터’의 활동가다. 듬직한 체구에 넉살좋은 이 청년은 신학교 동아리를 통해 빈곤의 현실에 눈을 뜬 이후로 줄곧 쫓겨나는 사람들의 친구로 살아왔다. 그는 몇 해 전 옛 서대문형무소 앞 일명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 소식을 듣고 짐을 싸서 거기로 들어갔다. 새벽에 구청 직원과 용역이 들이닥치면 세입자들과 함께 막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교수와 가수와 종교인이 함께 어울려 문화제와 예배를 하면서 대책 없는 철거에 저항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도 비슷한 싸움을 했다. 그는 구청 공무원도 만나고 국회 토론회에도 간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통칭 상가법)을 개정해 보호기간이 이전의 5년에서 10년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세입자들의 숱한 몸부림을 그는 곁에서 보았다. 상가법이 바뀌었어도 리모델링, 재개발, 재건축으로 퇴거는 쉽게 이루어진다.

이종건씨는 아현포차, 구룡마을, 노량진수산시장, 명동2지구 등 서울의 다른 철거 현장도 찾아다니며 분노하고 긴장한 철거민들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식탁을 차려 함께 먹었다. 그렇게 맺은 인연들과 나눠 먹은 음식 이야기를 담은 그의 책 「연대의 밥상」(롤러코스트, 2022)에서는 재개발로 잃어버린 골목과 가게, 사람 냄새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는 건물과 땅을 보고 부동산 가치를 따지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공간이 사라지면 사람과 문화가 지워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연대의식도 철거당한다는 것을 그는 증언한다.

“너무 쉽게 쫓아내고 지워버린 인간성을 지켜온 최후의 보루”인 노포에서 그는 “더불어 즐기며 사람다운 삶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켰고 잘 사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종건씨는 감리교 전도사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말한 변두리로 간 사람, 양 냄새 나는 목자의 모습을 그에게서 본다. 그가 목회하는 ‘사이교회’는 교인이 열 명이 될까말까한데 그 가운데는 명동재개발 2지구의 음식점 사장도 있다. 몇 달 전부터 사이교회는 명동성당 아래 세입자 농성 천막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그곳에서 빵을 쪼개면서 그는 빼앗긴 자들을 위한 사랑을 노래하고 쫓겨난 자들을 위한 위로와 그들이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는 용기를 기도한다.

누군가의 눈물과 상처가 있는 곳 / 그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힘이 새로 돋는 곳.(송경동)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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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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