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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공동체의 힘/ 이종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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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주부터 본당 공동체에 슬픈 소식이 찾아왔다. 2012년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ongducheon International Catholic Community, 약칭 DICC) 설립 초기부터 활발하게 활동해 온 형제 한 분이 산행 중 갑자기 선종한 것이다. DICC 가족들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난 11년여 동안 본당 행사에서 함께 부대껴 온 본당 가족들의 슬픔도 대단히 컸다. 지병인 당뇨로 인해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날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이다.

통상 이주민의 장례라고 하여 선주민의 장례와 다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산행 중 갑자기 쓰러져 선종했더라도 주변에 CCTV가 없어 선종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기에 부검을 해야 했고,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게다가 본국의 가족들이 시신을 고향으로 데려오기를 고집해 방부 처리 후 본국으로 보내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너무나 큰 짐이 한국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어깨 위에 얹혀 버렸다.

일단 DICC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주일미사 때 장례 비용을 위한 2차 헌금을 걷기로 한 것이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사목회와 상의해 본당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주일미사 때 2차 헌금을 걷기로 결정했다. 소식을 들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도 교구청과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형제의 본국 대사관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관련 관청에 공문을 보내 유가족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덕분에 2개월 가까이 예상했던 모든 장례 일정은 3주 만에 끝났고, 무사히 형제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사실 장례 과정 전체를 돌이켜 볼 때, 기억에 남는 모습은 따로 있다. 빈소조차 차리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함께 모여 기도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DICC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본당 공동체가 보여준 모습이다. 겨울 추위에 바깥에서 기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소성전을 내어주자던 모습, 영정 사진만 놓는 게 마음 아프다며 꽃을 꽂던 모습, 아침 미사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성전으로 내려와 연도를 바치던 모습, 빈소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며 낮에도 몇 번이고 찾아와 기도를 해주고 가던 모습. 그 모습들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의 실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분명한 표징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공동체’가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이라고 정의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한마음 한 몸’. 단순히 몸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심지어 영혼까지도 함께 모여 있는, 그런 한마음 한 몸.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전체주의적 독재 정권 치하를 겪은 후유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의 영달에 늘 밀렸던 개인의 행복을,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개인주의적 분위기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주의가 팽배한다 하더라도, 오롯이 개인으로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때로는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그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고 위로받고도 싶은 것이 사람이며, 그 욕구는 오로지 공동체를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형제의 시신이 본국을 향해 떠나가던 날, 서품 10주년을 맞아 성지순례 중이던 선배 사제가 급작스레 선종했다. 서로 기도하고 위로하며 시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일주일은 슬픔의 시간이었지만 교구 공동체의 힘을 느끼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공동체의 힘을 느끼는 순간들을 더욱 많이 만나면 좋겠다.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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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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