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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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좋은 부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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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준비하는 마음이 분주합니다. 3월이면 저는 학부모가 되거든요.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고 축하를 받았던 게 며칠 전 같은데, 그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생이 됩니다. 책가방을 장만하고, 실내화를 사면서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실내화는 까맣게 더러워진 채 오래 신었고, 우산을 빠뜨려 비 맞으며 하교하는 나날도 당연했지요. 그런 기억들이 서러워 바쁘신 부모님을, 무심하신 부모님을 탓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제가 이젠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길러 학교로 보냅니다. 자라서 보니 그런 결핍감, 자잘한 상처들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더러운 실내화를 신고도 열심히 공부했고, 비 맞았다고 아팠던 적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움도 느껴보았고, 좌절감도 맛보았지요. 그래서 원만하게 자라났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아이가 좌절하고, 부끄러워하고, 위축되고, 슬퍼하는 순간들을 잘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걸 막고 싶은 게 부모의 본능인지라, 아이가 힘겨워하는 순간을 품고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잘 기른다는 것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소화해 내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윤우상 박사는 「강강술래학교」에서 ‘도와주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절대 맞지 않도록 보호막을 쳐줄 게 아니라, 사회로 나가 받을 온갖 상처에서 금세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의 부모는 어떤 걸 해줄까 보다 어떤 걸 안 해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죠.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책에도 답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고, 나중에 억울한 나머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고함이 나오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마음으로 키우라고요. 그 지혜로운 말씀에 웃음을 터뜨리며 새삼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예비소집일에 찾아간 학교에서는 3월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익히고 연습해 두면 좋을 것들을 일러주셨습니다. 1. 우유팩 뜯는 법. 삼각 모서리를 옆으로 열어젖히고, 다시 날개를 눌러 마름모꼴로 입구를 여는 것이 제법 요령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이번에 가르쳐 보면서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2. 스스로 바지를 풀러 용변 보고 뒤처리하는 법. 남학생의 경우 소변기 앞에서 바지를 훌렁 내려서 바지가 바닥에 끌리면 젖을 수도 있고, 엉덩이를 보였다며 놀림을 받기도 한답니다. 앞섶만 살짝 풀러 용변 보는 기술도 익혀야 합니다. 3. 쇠젓가락 훈련. 유아용 플라스틱 젓가락이 아닌, 어른용 쇠젓가락의 무게와 길이를 익히는 것도 필요하지요. 급식에서는 유아용을 따로 구비해 두지 않습니다.

이런 안내를 들으며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내 품의 아기가 이젠 품에서 나와 스스로의 사회를 구축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아이가 사회로 내딛는 이 발걸음에서 나의 역할은, 한 걸음 더 물러나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의 세계가 더 확장되도록 지켜봐 주는 일이라는 것을.



최현정 아가시다(심리상담가·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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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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