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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할배쉐프의 비밀 레시피 / 강성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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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좀 볼텨? 간이 맞는가 모르것네 그려….”

할아버지 요리사(할배쉐프)들이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대화이다. ‘할배쉐프’는 독거 남성 어르신들의 정서 지지 및 일상생활 기능 향상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다.

할배쉐프!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도 않는 이름. 월 1회 할아버지 요리사로 변신하여 스스로에게 대접할 음식을 배우는 시간이다. 대부분 어두컴컴하고 습기 가득한 지하 단칸방에서 날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내시는 분들, 우리가 정겹게 부르는 이름 할아버지이다. 우리나라 문화에는 지금까지 잘 맞지 않는 풍경이기도 했다. “무슨 남자들이, 할아버지들이 음식을 배우느냐고. 그냥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 안 그래요?”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셨던 프로그램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어느덧,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시는 모습이 멋있어졌다. 화려한 요리 거창한 메뉴는 아니지만, 우리 어르신들의 삶의 역사인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지혜와 청춘, 어쩌면 그 시절엔 다 차려진 밥상에서나 마주했던 그 요리를 직접 만들고 있다는 것에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행복한 모습과 함께 웃음꽃이 피어났다. “오늘 배운 이것과 지난번 메뉴로 또 한 달은 살 수가 있으니까 이젠 걱정 없어요.”

이렇게 일 년의 추억을 기록해 「할배쉐프의 비밀레시피」 요리책을 발간했다. 소박하지만 출판 기념회도 열어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직접 만드신 반미 샌드위치를 대접하시고 어깨를 으쓱으쓱하시며 함박웃음을 얼굴에 담으셨다.

지금 우리 사회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노년기가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는 증대되고 있지만, 가정과 사회는 노인을 의존적 존재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연구팀-박연환·고하나). 지난 2018년 8~10월 경기도에 사는 65세 이상 독거노인 1023명을 대상으로 남녀별 전반적인 삶의 질에 대해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 제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이 여성 독거노인보다 더 우울해했다. 아마도 문화적 배경 아래 긴 세월을 살아온 남성들이 혼자가 됐을 때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이에 노년의 주체적인 삶과 노년의 사회통합을 지향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 구축은 필요하다.

건강하신 분들도 사회적인 직업 역할을 상실하게 되면서 갑자기 밀려드는 여가시간을 고민한다. 특히 남성 독거노인들은 그 간절함이 배가 된다. 인구 사회학적 특성상 활발한 상호교류를 통해 관계를 맺는 여성에 비해 훨씬 취약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가족 및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치매나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이나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고립되기 쉬운 독거노인, 특히 남성 독거노인에 대한 사회적, 종교적 안전망을 갖추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배쉐프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먹거리 준비를 넘어 지역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 축제에 매년 초대받아 음식 부스를 운영하고 얻어진 수익금으로 지역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교류하고 만남의 장을 통해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어르신들이 존재감을 높이고 일상에서 정서적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작게라도 뒤늦게 얻은 솜씨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노령사회 속으로 로켓처럼 달려 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 아직은 그 단계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다가올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이참에 우리 사회 안에 노인을 위한 복지는 무엇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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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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