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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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평화칼럼] 태아와 인공지능

이상근 마태오(미국 테네시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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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을 주장하는 프로 초이스(Pro-Choice) 진영은 여성의 낙태 선택 권리를 강조하며, 여성 개인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태아의 생존할 권리’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혹은 기타 이유가 낙태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라고 보면서도, 같은 이유들이 태어나 숨 쉬는 아이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인간에게는 특별한 가치와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기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결국 프로 초이스 진영과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핵심 차이는 태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하는지 여부에 있다.

프로 초이스 진영이 하는 주장의 바탕에는 태아가 완전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제로 ‘능력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시기 이전의 태아는 뇌 활동이 없으며 의사 표현 능력이 없고,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능력도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살펴보면, 인간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내는 인공지능의 예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언어 이해와 창작, 전문 분야의 지식 테스트, 때로는 감정을 모사하는 능력까지 인공지능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예술의 영역도 인공지능이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불과 몇 달 전의 인공지능과 오늘의 인공지능의 차이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태아와, 인간보다 더 인간이 하던 일을 잘해내는 인공지능을 보며 우리는 인간의 가치가 무엇에 기반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부분의 방면에서 태아보다는 인공지능이 더 뛰어난 인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더 큰 ‘인간의 가치’를 가질까?

태아에게 없는 뇌 활동, 인지 능력,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 가치의 필수 요소라고 한다면, 심각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인간 가치를 폄훼하게 될 것이다. 만일 창작하고,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여야 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수십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세상 모든 화가의 그림 스타일로 뭐든지 그릴 수 있는 인공지능이 이제 말문을 튼 어린아이보다 더 큰 인간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하느님께 부여받은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기준을 세우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인간이 아닌 것에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태아는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하느님의 창조물이며,(창세 1,27) 인공지능은 인간 삶을 돕기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태아는 사람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보다 무한히 큰 가치를 지닌다. 태아는 인간이기에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일 뿐 아니라, 생존 능력조차 가지지 못한 가장 약한 존재이기에 더 큰 보호가 필요하다. 성경은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잠언 31,8-9)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상기해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인간과 비슷한 혹은 대부분의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들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이 세상에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들도 있을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인공지능을 적대시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며, 신앙의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지켜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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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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