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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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손녀 바보’의 간절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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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60대 중반으로 접어든 현재에도, 코로나19의 위기가 한창이던 암울한 시기에도, 정년퇴임 이후의 일상의 변화로 외로움을 겪던 시간에도, 기다림의 설렘을 가져다주고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소중한 선물로 나누어주는 주님의 천사가 있습니다. 이제 39개월의 생명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면서 날로 ‘끌림’을 유발하는 손녀가 바로 그 당사자입니다. 저는 어디서나 공개적으로 ‘손녀 바보’임을 선언하고 주님께 변함없는 은총과 행복을 간구하며 신앙의 힘을 키우고 감사의 기도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손녀 스텔라가 15개월째 되던 달, 어린이집에 등록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아이의 엄마 비비안나, 아빠 바오로가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육아 보조의 책임을 저와 할머니 데레사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율리아와 바오로 두 자녀를 키워 온 이력이 낯설 정도로 처음에는 온통 실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에 손녀의 집을 찾아 무심코 초인종을 눌러 한창 잠에 빠진 손녀를 방해하던 우매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낮에 잠을 재워야 할 시간에 자기 싫다는 아이가 측은해 온갖 기분을 맞추려 하다 보니 결국 그날 아이의 낮잠을 빼앗아 일상의 평화를 깨뜨려 따끔한 눈총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두 해 전에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초주검이 된 상태에서 가슴에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하느님께 할아버지인 제가 대신 아프게 해 줄 것을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주일을 기침하며 고열로 고생할 때 감기 증상일 뿐이라고 말하던 동네 의원의 말을 믿고 폐렴 치료의 시기가 늦어 아이의 부모보다 더 자책하며 눈물을 흘린 때도 있었습니다. 손녀가 잦은 병치레로 여기저기 동네 병원을 전전할 때는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그저 신앙의 힘으로 치유의 기도만을 열심히 바칠 뿐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듯이 오늘도 손녀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요즘은 동화 속의 이야기를 역할극으로 함께 만들어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려 합니다. 그때마다 어디서 놀라운 생각이 나오는지 하느님께서 빚으신 작품인 인간에 대한 경외감에 빠져듭니다. 처음에 ‘도깨비’란 말만 들어도 무서워하던 손녀가 이제는 “도깨비가 오늘 할아버지 집에 온다고 나한테 말했어요~”라고 은근슬쩍 협박을 하면서 할아버지의 변신을 유도해 ‘퇴치’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온갖 몸동작을 통해 변신을 시도하고 손녀의 마음에 들고자 최선의 연기를 합니다. 손녀는 이런 할아버지를 놀이 친구로 매우 신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 18,1-6 참조)라고 하셨습니다. 가끔씩 “할아버지가 좋아~”라고 말하는 손녀가 주님의 큰 상처럼 느낍니다. 이런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니 오늘도 건강한 할아버지가 되어 손녀와의 동행에 온 힘을 쏟습니다.


이제는 손녀 바보가 되어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허락하시고 퇴임 이후 제2의 삶을 베풀어 주시는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행복과 감사를 나눔과 기부의 신앙으로 이어서 세상의 고통 받고 배고프고 아파하며 외로움에 처한 어린이들의 수호천사가 되도록 기도를 바칩니다!


글 _ 전재학(대건 안드레아·인천교구 중3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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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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