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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코스모스 향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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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이란 곳이다. 대구에 인접해 있지만 전형적인 농촌이다. 어느 노래가사에도 나오듯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좇던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면서 혼자 대구로 유학(?)을 나왔다.

시골에서만 자란 내게 당시 ‘대구’란 도시는 엄청난 문화적, 정서적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 마디로 나는 ‘완전 촌놈’이었다. 필자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골집으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곳을 오래전 가본 이들은 잘 알겠지만 대구에서 신동으로 가기 위해선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요즘이야 산 옆으로 새 길이 뚫려 있지만 예전엔 그랬다. 특히 가을에 이곳을 지날 때면 코스모스 향에 흠뻑 취할 수 있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산 중턱에는 한센인들이 마을을 이뤄 오래전부터 터전을 잡고 있다.

어릴 적 필자가 성당에 다닐 때는 이들과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다. 우리 본당 관할 공소였기 때문에 대축일이나 여름 성경학교 등에는 이들도 함께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친구 부모님들께서 정성이 가득 담긴 맛있는 밥상을 차려 오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무거리낌이 없었다. 친구 부모님들이 우리와 조금 다르게 아프다고만 생각했었다.

비록 일부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이지만 대구에 유학 와서 조금 황당한 일을 몇 번 경험했다. 고향이 신동이라고 밝혔을 때 어떤 이는 “그러면 혹시 한센 환우촌 출신 아니냐”며 조금 꺼림칙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또 어떤 이는 “그곳에 가봤느냐, 어떻게 그런 곳을 갈 수 있느냐, 사람들이 너무 징그럽지 않느냐” 등등의 말을 생각 없이 내뱉기도 했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것들이 그들 눈에는 마치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이제야 솔직히 고백하지만 부끄럽게도 이런 일들이 가끔 있다 보니 어느 경우엔 출신 고향을 밝히기가 싫어질 때도 있었다. 감히 비교할 부분은 아니지만 사도 베드로께서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했듯이 언제부터인가 나또한 이들을 모른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 왜 당당하게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환우촌에 친구들도 있고, 자주 갔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곳엘 들른다. 아직도 필자가 아는 지인들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들의 아픈 현실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 그들의 편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유난스러웠던 여름이 훌쩍 지나고 어느덧 가을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어릴 적 고향 집으로 갈 때 그 코스모스 향기가 그립다. 이번 가을에는 우리 가족이 함께 다녀올까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릴 적 아버지가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던 곳이라 말해줄 것이다.

“귀머거리가 듣지 못한다고 하여 그에게 악담하거나 소경이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 앞에 걸릴 것을 두지 마라.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라. 나는 야훼이다”(레위 19, 14).

마승열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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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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