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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화해 일치] 낮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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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말 기준 통일부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총 수가 2만7518명에 이르렀다. 그중에 여성이 1만9267명으로 전체 입국자의 70를 차지하고 남성은 8251명으로 30다. 통계만 보더라도 여성이 왜 더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2001년까지는 남성들이 훨씬 더 많이 입국했다. 그러다가 2002년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배경은 대략 이렇다. 초기에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자유를 찾아 귀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로 남성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사회주의 몰락과 외교적인 고립으로 외부 지원이 차단되고 거기에 자연재해까지 더해져 총체적인 경제난으로 북한에 ‘고난의 행군’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결국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배급체계에 의존하던 사람들이 정부만 바라보고 차일피일 기대하고 있다가 참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들은 급기야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인신매매 등의 형태로 대거 이동했다. 열악한 상황의 가정으로 팔려가 결혼하거나 가사도우미 공장 노동자 혹은 식당 등 요식업이나 서비스업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그러다 보니 불법입국자 신분으로 중국 공안에 잡힐 경우 언제 북송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삶과 함께 극도의 인권침해에 노출되며 착취의 대상으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형태로 생계를 위해 ‘비법’임에도 과감히 ‘밀수’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가해지는 처벌의 위험을 불사하고 장사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들은 감시와 통제의 첫 번째 대상으로서 자유롭지 못한 몸이라 이동에 제약이 따른다. 또한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젖어 살던 생활습관에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쉽게 ‘장마당’이라는 생활전선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남성들은 ‘낮전등’(낮에 전깃불 있으나 마나)이나 ‘멍멍이’(집이나 지키는)라고 칭해질 정도로 그 지위가 한심하게 되기도 했다.

급기야 내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안 후에야 비로소 장마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중국까지도 넘나들기 시작했다. 남성들의 경우 설사 중국에 넘어갔다 해도 운이 좋아 한국기업 등 안전한 곳에 취업한 경우는 극소수다. 그나마 일손이 바쁜 동안에는 은신하기가 가능하지만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거취가 위태로운 처지가 된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온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적응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을 남한에서 적용시키기에는 남한 문화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세대주’로 섬김 받았던 환경에서 이제 여성과 동등해지거나 북한 여성들이 남한에 와서 남한 남성들의 생활방식을 접한 나머지 눈이 높아져 부엌일 등 가사분담과 친절한 태도(말씨 에티켓 등)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살던 방식을 고집했다가는 영락없이 낮전등이나 멍멍이는커녕 아예 퇴짜를 맞기에 딱인 처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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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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