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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이 위선자야 문제는 바로 너야! / 김혜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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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아버지’며 정치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사실 도덕철학자이기도 했다. 저서 「도덕감정론」은 그가 “묘비에도 새겨 달라” 할 정도로 평생에 걸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선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 사건보다는 자신의 작은 불운에 더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하고 있다. 연일 보도되는 엄청난 사망 사건들보다 자신의 새끼손가락 통증에 더 신경을 쓰는 나약한 인간 모습이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것에 있어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이렇게 모순적인 인간이 누군가 타인의 행복을 해치려고 하면 왜 그토록 염치없는 격정으로 큰 소리를 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인간애(이타적인)의 여린 힘으로는 자기애가 일으키는 강력한 충동을 이겨낼 수 없다. 조물주가 심어놓은 자애심의 미약한 불꽃도 자기애를 태워 없애버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정한 관찰자’라는 것을 등장시켜 그의 눈으로 잘못 발현된 자기애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양심과는 달리 ‘어깨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으로 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심판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상상의 존재를 등장시켜 내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인간이 ‘영혼의 불꽃’ 혹은 ‘신의 흔적’이라고 하는 양심에 의지하지 않고도 매 순간 공정한 관찰자를 의식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혹여 그의 눈을 의식하여 되레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혹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해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 위법적인 노력도 마다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정말 정직하고 투명하게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양심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신의 눈’이지만 공정한 관찰자는 자기밖에 존재하는 ‘세상의 눈’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세상의 눈도 “지나친 이기심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결국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애의 거울로 ‘타인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길로서 도덕적 감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즘 해외토픽에서나 듣던 매우 불편한 보도를 연일 접하고 있다. 부천 11세 여아 학대사건 이후 개별 교육청과 경찰이 갑자기 등교 안하는 학생들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덕분에 놀라운 부모들 숨겨진 살인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와 시도 교육청 지자체의 수수방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어린 생명들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이고 말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번 부천 여중생 백골사건 역시 장기 결석자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경찰에 가출 신고된 여중생의 부모가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이를 수상하게 여겨 주거지에 대한 압수영장을 집행하던 중 밝혀진 것이다. 살인자가 친부(親父)이며 목사라는 신분 외에도 독일 유학파 박사에 유명 신학대학교 겸임교수였다는 것을 차치하고도 딸이 사망하기 전날 5시간을 때린 폭행범이 기도를 하면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신앙인이었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고 들어와 방향제와 청국장으로 냄새를 가렸다는 사실이다. 살인자의 이중성과 위선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가 태연하게 재연했다는 현장검증 보도를 보며 염치없는 격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사회는 그럼 이 가공할만한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관심의 세계화가 만연해 있는 가운데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어려운 이웃이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나는 과연 이 사건과 무관할 수 있는가? 우리의 도덕감정은 “이 위선자야 문제는 바로 너야!”라는 주님의 목소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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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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