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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봄날 오전에 드는 생각 / 이연학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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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활대축일이 다가오면 갖은 봄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온천지를 뒤덮는다. 사람도 지상에 숨탄것들 중 하나일 터 땅 밑에서 웅성거리다가 새순으로 꽃으로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솟아 나오는 봄기운을 몸속으로 왜 못 느끼랴. 몸 안을 휘젓고 다니는 봄기운에 없던 힘도 솟고 더러 나른한 졸음에 겨워 까무룩 낮잠에 빠지기도 한다.

매년 대체로 봄꽃이 가장 좋은 이 때 성주간과 부활대축일을 배치한 옛 교회 어른들의 영적 지혜에 거듭 감탄하게 된다. 인간의 세상에 희망과 절망 둘 다 힘이 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것(그리고 남아야 하는 것)은 결국 희망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성야 전례에서 우리가 새삼 그리고 거듭 길어내는 확신이요 신앙의 선물이 아니던가.

겨울 하늘은 시리도록 맑아 좋았다. 봄날 햇살은 온화하고 다정해서 좋다. 없는 사람 견디기에도 한결 나은 철이다. 볕이 가장 좋은 오전 시간에 산책을 하노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늘 이같이 다정하고 사심없는 훈기가 돌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 끝자락에 몇 년 전 한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된 일본 드라마 이 따라붙는다. 웅숭깊고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주연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곰곰 생각하면 이 연속극의 미덕은 참 많다. 교회생활(그리고 수도생활)과 관련해서도 말이다.

은 말 그대로 남들 다 자는 한밤중부터 새벽까지만 문을 연다. 대도시(도쿄) 한복판 어느 후미진 골목에 자리잡은 이 식당 이름이 그냥 ‘밥집’이란 대목에선 피식 웃음이 나온다. 평범하다 못해 게으르단 느낌마저 든다. 이런 장소 이런 시간 이런 이름으로 장사하는 집에 ‘마케팅 전략’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가게는 분명 살벌한 경쟁사회의 자장(磁場) 바깥 혹은 적어도 외곽에 있다. 그런데도 손님이 많이 드냐고? 주인공의 대사를 빌면 “글쎄 그게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편”이란다. 각양각색의 인생들이 마치 둥지를 찾아드는 새처럼 오밤중에 이 구석진 밥집을 찾아드는 이유는 소위 ‘맛집’이어서가 아니다. 꼭 배가 고파서만도 아니다. 외롭고 상처입고 스산하고 고단한 인생들이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이 ‘고프기’ 때문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는 주님말씀은 과연 진리다.

그런데 식당주인이 사람들에게 하는 일이 꼭 두 가지뿐이다. 밥 차려주는 일과 들어주는 일. 주인공은 원체 과묵해서 자칫 주인공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실 잘 보면 그는 늘 뒤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하여 매회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런데 대단찮고 시시하게까지 보이는 이런 역할 때문에 그의 작은 식당은 세상에 드문 환대와 치유의 공간이 된다. 거기 수많은 사람이 깃들어 쉬어간다. 서로 좋은 인연으로 얽히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 의 시공간에서 의 ‘사막’(거기 숨은 오아시스)을 떠올리는 것은 나뿐일까. 교회와 그 안의 수많은 공동체들을 떠올리는 것이 나뿐일까. ‘하느님의 집’이기에 ‘인간의 집’이기도 한 교회는 어쩌면 심야식당같이만 있어 주어도 자기 몫을 웬만큼은 다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구든 차별 없이 집에 들여 밥 차려주고 얘기 들어주기. 그렇게 환대하기. 이것이 성찬의 핵심 아니던가. 또한 사목의 본질도 결국은 이것 아니던가. 프란치스코 교종의 확신에 따르면 사목은 늘 경청에서 시작하는 것일진대. 오늘처럼 유난히 따듯하고 다정한 봄날 어느 유명한 시구를 살짝 비튼 말 한마디 괜히 입속에 맴돈다. “나는 교회 안에 있어도 교회가 그립다.” 그런 내게 주님은 살짝 웃으며 “네가 그리고 너희가 교회 아니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따듯하고 다정한 봄날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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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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