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방주의 창]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회공동체” / 고병수 신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작년 이맘때쯤 서귀포시 강창학 종합경기장에서 대천동 한마당체육대회가 열렸다. 서귀포시 대천동은 강정동을 포함해서 4개 동으로 이루어진 행정동(洞)으로, 동민들끼리 단합을 위해 격년마다 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여기서 강정마을은 축구를 비롯 3개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주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생채기를 온전히 씻어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실로 오랜만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나아가 승패를 떠나 마을공동체 간의 화합과 우애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오래전부터 서로 마을간 경계를 넘어 선후배, 친구, 이웃형제자매들로 얽히고설킨 관계로 살아와서인지 우승의 감격도 있었지만 서로 얼싸안고 반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별히 강정주민들의 얼굴에서 한때라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되어 눈물이 핑 돌았다.

강정마을은 설촌(設村)된 지 수 백 년도 훨씬 넘는 공동체다. 현재 미수(米壽)가 넘으신 어르신에서 이제 갓 태어난 아가에 이르기까지 후손 대대로 영원할 것이다. 예부터 주민들은 여러 면에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백미는 선조들이 남겨주신 ‘혈연공동체’란 유산 때문이다. 그들은 조상님들의 삶을 현재화(化)하여 추억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을공동체를 남기려는 열망이 매우 강하다. 비록 성(姓)은 달라도 모두가 삼촌이고 아우다. 누가 아프면 같이 아파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마치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며 오순도순하게 살아왔다. 여기다 주변환경마저 빼어나고 물이 풍부해, 땅이 척박하여 대부분 밭농사를 해온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논농사를 지으며 넉넉하게 살아 제주도 최고 마을이란 뜻으로 ‘일강정’이라 일컬어 왔다.

바로 이곳이 10년 전부터 일방통행식의 군기지 건설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은 주민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리고, 순박한 마음에 큰 돌덩이를 안겨주었다. 마을공동체가 그야말로 가뭄의 논바닥 갈라지듯 쪼개지고 깊게 패었다. 대놓고 말해 어떤 이유와 명분을 대도 용납될 수 없는 국가의 잘못이다. 항간에 어떤 이들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 해서 만일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이에 더해 뜬금없이 애국심 부족과 님비현상(?)을 거론한다. 군기지 건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강정주민들 중에는 6·25 참전용사도 있고, 적어도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충실히 살아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백성들이다.

이제라도 관계당국은 주민들의 원의가 무엇인지를 성심껏 헤아려 주길 바라고 싶다. 편협한 이념의 잣대와 값싼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주민들을 함부로 몰아세우지 말자.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대의(大義)와 자존심에 더이상 금이 가게 해선 안 된다.

그 무엇보다도 추진과정에서의 절차적 잘못과 미비함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여 사과하고, 주민들의 멍든 가슴에 더 큰 피멍을 들게 하는 구상권 청구를 철회해서 진정으로 상생과 화합의 손길을 내미는 게 급선무다. 그런 후에 겹겹이 쌓아둔 고통과 상처의 편린(片鱗)들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겸손하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주민들의 닫힌 마음은 서서히 열릴 수 있고 신뢰의 씨앗이 조금씩 싹틀 수 있으리라. 이 시점에서 우리 제주교구는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을 견지하며, 세심하게 주민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함께 해오고 있다. 향후에도 깨어있는 자세로 그들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고 평화와 화해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까지 아낌없이 기도와 협력을 다하고자 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병수 신부(제주교구 복음화실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11-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시편 118장 151절
주님, 주님께서는 가까이 계시며, 주님의 길은 모두 진실이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