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민족·화해·일치] 성찰과 미래 / 윤훈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새로움을 꿈꾸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반성과 갚음이다. 우리 민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를 냉철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삼국통일은 외세를 끌어들인 전쟁에 의한 흡수통일이었다. 강제합병을 통일로 착각했고 결국 재분열됐다. 게다가 강대국의 힘을 빌려 왔기에 이후 조선시대까지 중국에 강력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강제 합병 이후 영구지배를 위해 교묘한 이간질로 조선을 심각하게 분열시켰다. 우리는 패배주의적 식민사관에 세뇌됐고, 해방 후 분단은 이미 역사의 필연이 돼버렸다. 해방공간에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잔인하게 동족을 공격했고, 결국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일으켜 조국을 끔찍한 비극에 빠트려 놓았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세계에는 데탕트(긴장완화)의 기류가 흘렀지만, 남북의 기득권은 그 탈냉전의 기회마저 권력 강화의 도구로 악용했다. 통일정책은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다. 오랜 분단기간 동안 인본정신이 없는 잔인한 권력이 남북을 철저히 지배해왔다. 남북의 기득권들은 닫힌 마음으로 상대방을 폭력적으로 인식했고, 자신들이 바로 통일의 장애물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런 성찰도 없었고 아무도 근본적으로 변화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과거가 우리의 통일이 아직도 ‘안개 속의 풍경’인 이유다. 지금 지구촌 모두가 하나 되는 세계화로 향하는데 한반도는 반시대적 분단체제에 집착하고 있다. 시대의 역류는 동반 몰락의 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북한은 결국 중국에 강하게 귀속될 것이고, 남한은 일본과 미국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남북의 위정자들이 통일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역사의 근원으로 회귀해야 한다.

1000년도 넘게 우리는 소중화(小中華)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황국신민과 내선일체를 강요받았고, 해방 후 현재까지 미국에 기대며 살아와야 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신분제인 반상제도를 만들어 같은 민족을 착취해왔지만, 강대국들에 대해선 한 번도 소아병적 의존성에서 탈피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서양에서 생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간의 극단적 대결이 억울하게도 우리 땅에서 일어났다. 약자의 업보였다. 그리곤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에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동족끼리 업신여기며 싸우는 상황이 아직도 전개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화해하는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평화가 없는 것일까?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형제끼리 싸우면 큰 벌을 받을 것이며, 미사를 드리기 전에 화해부터 할 것’을 가르치셨다. 원죄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들의 마지막 한 푼까지 갚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진정 큰 세계로 나가려면 민족화해가 먼저다. 위대해지려면 우선 깊게 성찰하고 갚아야 한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4-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콜로 4장 2절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