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말 편지] 시간을 넘어서다 / 신달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 해 마지막 밤과 한 해 시작의 새벽 시간은 열렬한 기도로 끝나고 시작한다. 도무지 무심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면 이 두 가지 시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깊이 자기를 들여다보게 되는 이 시간은 겨울이다. 왜 이 뜨거운 시간을 혹독한 겨울에 두었는지 아슴하게 알 것도 같다.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를 일이지만 한 해의 마지막 시간과 한 해의 출발 시간은 사실 가장 열렬한 시간이다. 속 깊은 반성과 성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의 움을 틔우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불꽃 하나 마음에 켜는 시간일 것이다. 발끝에 불이 붙을 것 같은 타오르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밖에는 눈보라치고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짐승소리를 내고 있는 냉혹한 겨울. 여기서 우리는 “넘어서다”의 힘을 다잡아 벌떡 일어서야 하는 각성의 시간은 그래서 겨울이어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웠다. 십자가와도 다름없는 그분의 탄생은 겨울에 그것도 새벽에 그것도 마구간에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 신앙인의 길이다. 인간의 길에서 신앙인의 길을 가는 일은 이 탄생의 비밀을 알아가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사방에 벽이 있는 방이 아니라 탁 트인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은 평등과 자유와 사랑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류의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가족 간의 평등과 자유와 사랑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길은 너무나 참담할 때가 많다. 또한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그 빛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삶이란 그렇게 장애와 위험을 넘어서며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넘어선다”라는 말을 늘 기억한다. 자신의 의욕과 팔과 다리의 힘이 부족할 때 이 말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괴어 온다.

“일어서 걸어 보아라.”

앉은뱅이도 걷는 이 기적이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말이다. 단 한 번도 희생의 손을 뻗어 본 적이 없으면서 “외롭다”고 징징거리는 자신도 넘어설 일이 많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우리도 새해의 첫 길에서 탐욕과 미움을 버리려는 기도와 함께 나아간다면 신앙의 기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너무 나약하고 너무 목말라서 허세도 허락하고 허영도 불러들이고 탐욕도 깃을 펴게 하는 것이다.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왜 우리가 신앙을 택했는가를 한 번 더 질문하면 몸의 비늘을 벗기듯 그 집착에서 조금은 물러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짐을 새해 몇 천 번을 하는 것이다. 가시가 있는 나무가 가장 약한 나무일지 모른다. 자기보호를 위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온몸에 가시라는 거대한 짐을 지고 사는 것이 가시를 진 나무일 것이다. 안으로 선하고 부드러우나 세상을 향해 약한 척하지 않으려 가시로 대변하는 일을 확 벗어 가볍고 가시의 짐을 버리는 새해가 되기를 묵상해 본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자신의 열등함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서 갈등의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움이 “움”트는 새해엔 사랑의 중심에 서 보고 싶다.

스스로의 고뇌와 영광을 새 창작품으로 새 무대에 세워 보는 일은 늘 우리를 지켜보시는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신다면 부족한 우리는 얼마나 기쁘겠는가. 나를 넘어서서 근육이 튼튼한 새 삶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 혹독한 겨울에 가장 따뜻한 생각을 하면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12-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잠언 16장 3절
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라.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