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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카이로스를 향하여 / 오세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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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희랍인들의 시간관념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나뉜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때, 기회, 순간을 말한다. 우리 신앙인의 관점에서 크로노스는 일상의 쳇바퀴 안에서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과 그것들을 담아놓은 평편한 역사로서 연대기에 해당하고, 카이로스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하는 ‘질적으로 특별한’ 시간이며 그에 대한 기억과 참여는 구세사에 해당한다.

우리는 2018년이라는 새해를 맞으며, 어떻게 카이로스를 맞이할 수 있을까?

카이로스는 영원과 찰나가 입맞추는 때이며 임마누엘 하느님을 만나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세계 속에서 24시간 시계에 의해서 통제되는 크로노스의 거대한 압력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돈이다’라고 되뇌며, 일분일초에 매여서 경쟁적으로 업무를 마감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한 강박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찰은 더더욱 필요하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구세사의 풍요로움을 맛들이기 위해서.

지난해 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격변기를 체험했다. 지난 대림절을 보내며 마리아의 기도(마니피캇)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되어 우리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봉헌되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들을 끌어올리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온갖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만나는 축복의 때를 기다려왔듯이.

이제 우리의 마음속 시간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겸허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부귀·영화의 때인가?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시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때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간은 결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며 종말론적 미래를 지향한다. 즉, 어제와 오늘 자기의 삶에 자족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도록 초대받는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종교인이든, 자기의 기득권에 묶여서만 살아가는 이들은 하느님 중심의 시간, ‘다가오는 변화될 미래’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마련이다. 교회 세습을 하는 개신교회가 ‘종교인 과세’를 가장 열심히 반대하듯이.

우리 한국사회는 일제식민지(시대)를 겪고 친일부역자들과 질적으로 단절하지 못 한 채, 크로노스적인 경제발전과 물질적 성장만을 바라보며 살아오다가, 오랜 적폐를 대면하며 ‘새로운 나라’로 향해 나아가는 중차대한 때를 맞고 있다. 물론, 우리의 일상과 삶의 자리가 온전히 변화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마음으로부터의 회심과 변화’가 중요하지만, 새로운 나라를 향한 사회구조 및 제도의 개선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은, 우리 사회가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롭게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우리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그 어떤 기득권, 즉 정치권력의 유지 혹은 돈 많이 버는 수단과 대체된다면, 하느님의 때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사회적 배제’로 상처받고 소외된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하느님의 때를 맞이하는 애덕을 쌓자. 해고노동자들처럼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 상처받고 배제된 이들은 때론 ‘상처’ 속에서 흐르지 못 하고 멈추어진 시간 안에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요구하신다.(마태 25,40) 혹시라도 일상의 무료함과 크로노스의 압박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다면, 우리 삶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분들의 삶의 자리를 접해보자.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충만케 하시는 하느님의 때, 카이로스를 만날 수 있으리니.

장기적인 경제침체, 북한의 핵개발, 사드 외압과 동아시아의 긴장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과 함께 새로운 길로 나설 은총을 청하자! 나와 우리 세상 피조물 모두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땀 흘려 일하시며 끊임없이 수고하고 계신다.(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 236)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 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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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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