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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순교자의 딸 유처자께 드리는 글’ / 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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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처자님, 임께서는 하늘나라 순교복자 아버지 곁에서 즐거운 나날 보내고 계시지요? 저는 임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자작 시극 「순교자의 딸 유섬이」 출간과 그 공연 이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공연은 세미 뮤지컬로 이루어져 순교자 곁에 그 옆에 혹은 그 뒤에 죽은 목숨 이상의 아ㅁ픔으로 살아갔던 이름조차 지워진 순교자 가족들이 있음을 내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 이름 ‘순교자의 딸 유섬이’(1793~1863)는 당당했던 전라도 최초의 신자인 유항검 복자(1756~1801)의 남겨진 딸로서 우리 앞에 우뚝이 서 계십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두 분의 고마운 분이 있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임께서 일생 관비로 거제부에서 살다간 사연을 임종 당시의 거제부사로 있었던 하겸락 선생이 후에 그의 문집 ‘사헌유집’에 기록해 둔 것이 기적 같은 고마움입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현실적인 우리 속의 유섬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사 하선생은 ‘사헌유집’ 권3 「부거제(附巨濟)」조에 “아버지가 사학을 범하여 관비가 되고 읍에 사는 노파가 수양딸로 삼아 기르며 바느질을 가르쳤다”로 시작하는 기록이 그것이었지요. 이어 나이가 들어 동정을 지키는 사연을 적고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양모에게 견고한 흙돌집(토굴)을 짓게 하여 그 속에서 25년을 살았다는 사연을 적었지요. 그 발심이나 그를 도운 양모나 어느 하나 기적 같은 일이 아닌 것이 없는 이것이 어찌 섭리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고마운 분은 ‘사헌유집’ 해제를 쓰다가 앞 기록을 발견한 전 수원교구 교회사 연구소 고문 하성래 교수입니다. 고문께서는 2014년 ‘교회와 역사’ 4월호에 ‘거제로 유배된 유항검의 딸 유섬이의 삶’을 보고하여 교회와 그 역사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해는 2월에 유처자님의 아버지께서 시복이 결정되는 때이고 그즈음에 작성된 하 고문의 원고는 4월호에 발표가 된 것입니다. 어째 이일도 예사롭지 않은 연계의 고리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같은 시기 아버지는 시복이 되시고 그 따님 유처자님은 우리에게 피바람 속의 정절과 기도의 일생이라는 한 편의 교훈적 표양으로 드러난 것이지요.

유처자님, 저는 그 자료들을 일별하고 제가 시인이니 일단 시극을 써보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시극에서 유념했던 두 가지 줄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형제간 아래로 여덟 사람의 순교자가 나왔다는 점과 임의 올케언니 이순이 루갈다의 동정생활의 완성이 그것이었지요. 전자는 시극 과정의 힘으로, 후자는 시극 내용의 전범으로 삼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8월에 마산교구 기획으로 「순교자의 딸 유섬이」가 출간되었고, 그 이듬해 2017년 10월에는 세미 뮤지컬로 각색(국민성 대본), 서울 마포 아트센터 4회, 교구 4개 지역에서 각각 1회씩 공연의 무대를 올렸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섬이 역을 맡은 류시현은 “천주님, 이제 저는 천주님께로 가겠습니다” 하고 잠시 마지막 얼굴을 연기로 보입니다. 기쁜 듯 또는 슬픈 듯, 안도인 듯 의탁인 듯 안면 주름살이 움직거리는 표현은 그만이 창출한 일생일대를 함축하는 상징적 연기력이었지요. 저는 그때 “유처자님 유처자님, 됐습니다” 하고 속으로 소리 질렀습니다. 화룡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처자야말로 우리 순교 가족사의 한 점 화룡점정이 아니겠는지요. 내내 천국에서 건승하시길 빕니다.


강희근(요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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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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