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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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편지] 지금 만나러 갑니다 / 김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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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 아침입니다. 어제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생애 첫 아침일 테고, 어제 세상을 떠난 분들은 영영 맞이하지 못할 아침이지요. 그리고 저에게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꼬박꼬박 찾아온 아침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저의 아침은 쏟아지는 잠과의 전투였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새벽 어스름부터 눈이 떠지는 날이 많아집니다. 주부로 사는 일상이 너무 뻔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감사하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이 내게 허락하신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한 아침입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부어 커피를 준비하고 책상에 앉습니다. 이제 저만의 작은 의식을 치르는 시간입니다. 아침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으며 하루의 첫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보내는 것이지요. 그 마지막은 늘 당신들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출근한 남편과 아이들부터, 매일미사에서 만나는 분들 점심약속이나 저녁약속을 함께할 친구들, 버스에 함께 타실 분들, 슈퍼마켓에서 마주치게 될 이웃들. 얼굴을 떠올릴 수 있거나 없거나 오늘 하루의 인연에서 마주쳐야 할 무수한 당신들을 축복하는 일이지요. 사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쓰신 ‘내 삶을 가꾸는 5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 나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 기원하라. 예수께서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하실 때, 우리는 무리한 요구라고 여긴다. 그러나 어제 다툰 사람에게 축복한다면, 지금 이 순간 더욱 새롭게 만날 수 있으리라. 그대는 그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축복받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하면서 가장 두려운 일은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들만 만나며 살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그러나 때로는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아쉬운 말을 늘어놓으며 부탁을 해야 할 때도,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이고요.

나도 나를 다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다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다 알지도 못하는데 이해한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일 테고요. 그래서 저는 그저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인정합니다. 뭘 인정하나고요? 하느님께서 나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만큼 그 사람도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글을 읽은 다음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하루 동안 만나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들을 축복해주기 시작한 후로는 ‘저 사람은 오늘 아침 내가 축복을 빌어준 사람이야!’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나든 내가 기꺼이 축복을 빌어준 사람들이니까요.

오늘 아침 저의 축복을 받은 무수한 당신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동옥(체칠리아)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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