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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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대요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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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600년이 넘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나서 지붕이 모두 타버렸습니다. 배우 안소니 퀸이 그 역을 맡았던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온몸으로 매달려 종을 치던 종탑은 다행히도 무사하답니다. 높디높은 지붕 꼭대기에서 거만스럽게 온 세상을 내려다보던 쇠로 만든 수탉 조형물이며 예수님 가시 면류관도 온전히 살아남았답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이 다 그렇듯이 노트르담 대성당도 온통 황금빛을 띠는 제대며 천정의 화려한 조각들, 스테인드글라스 성화들로 신자들을 압도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시며, 오늘 아침 우리 집 마당에 떨어져 죽은 직박구리 새의 목숨도 일일이 세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그 화려한 성당 안에 거하고 계실 듯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신에 차서 십자가 죽음의 길까지 마다 않고 걸었던 예수님 말씀과 행적을 돌아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화려한 성당이 상징할 법한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한다니요? 온 세상이 전지전능하신 당신께서 다스리는 나라인데 어찌 감히 폭력이 도처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건가요?

하긴 엊그제 보니 천주교 주교회의 앞마당에도 천주교 신자라는 이들이 몰려와서 “빨갱이 주교들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더군요. ‘빨갱이’와의 화해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주교님들까지 욕보이는 걸 보면 예수님 말씀이 맞는 거지요. 예수님은 서로 미워하며 다투지 말고, 생각과 처지가 다르더라도 화해하고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제자들이라는 이들이 당신 가르침을 전하는 교회를 향해 미움의 언어폭력을 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온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핵무기가 무려 2만 개. 1위는 러시아 7000개, 미국이 6800개, 프랑스 300개, 중국 270개, 영국 215개, 파키스탄 140개, 인도 130개, 이스라엘 80개, 그리고 북한이 60개로 9위랍니다. 우리도 보수 일각에서 핵무기를 보유하자고 주장하고 있지요.

미사일 경쟁도 치열합니다. 러시아, 중국은 최근 소리보다 10배나 빨라서 상대방의 방어가 불가능한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큰소리치고 있고 미국도 같은 수준에 가 있습니다. 소리가 1초에 340m를 가니 10배면 1초에 3.4㎞, 1시간에 무려 1만2240㎞를 날아가 핵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겁니다. 우리도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배워 소리보다 3배 정도 빠른 미사일을 개발했습니다.

주요 군사강국들은 오랫동안 무기감축 협상을 벌여 왔고 어느 정도 진전도 있던 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간의 감축 협정을 무효로 돌리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 마당에 이미 북한보다 100배, 1000배 강한 핵과 미사일을 가진 강대국들은 이제 막 자신들의 대열에 들어서려는 북한을 상대로 마치 만악의 근원인 양 몰아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과연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곳이 맞기는 한 건가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그것을 가져다 정원에 심으면 나무가 돼 새들이 가지에 깃들고, 하느님 나라는 누룩과 같아서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당신께서 만드셔서 악과 폭력은 얼씬도 못하는 꿈속의 이상향이 아니라, 폭력을 쓰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으로 지켜내고 겨자씨나 누룩처럼 키워내야 할 우리 평생의 일터,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이 길이 권력과 황금과 명예와는 영 거리가 먼 고난의 길임은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셨지요. 신자라는 이들로부터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주교님들도 그 길을 따르고 계신 거고요.

하느님 나라는 노트르담 대성당 황금빛 제대가 아니라 폭력으로 가득한 이 고통스런 세상 속에 있습니다. 화려한 성당은 불에 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 나라는 고난 속에서도 겨자나무처럼, 누룩처럼 날로 커져갈 겝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 (요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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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4-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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