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시사진단] 광장에서 배우기

박은미 헬레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교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박은미 헬레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교수




2016년 하반기,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드러나고 날마다 기상천외의 뉴스가 불거지자, 시민들은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은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는 가을과 겨울을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연인원 1700만 명이라는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시위 참여 기록을 세웠다.

광장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모두 경험하셨을 테지만, 광장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해집단의 짧고도 강렬한 주장이 담긴 펼침막들, 해학 넘치는 풍자의 글과 목소리가 시민의 눈길과 웃음을 자아낸다. 또 거리에 나와 이웃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친밀감을 느끼며 먹을거리를 나누고, 촛불과 형광봉도 무상으로 건네주는 자리다. 자기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은 물론 이웃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유인물까지 기꺼이 집어 드는 친절은 세계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광장의 미덕이다.

작년 11월 말, 한 토요일 집회에서의 일이다. 시민발언대 시간에 무대에 오른 장년의 남성 한 분이 ‘미스 박’이라는 어휘를 여러 차례 써 가며 대통령의 국정 비리에 분노를 뿜었다. 그의 말에 몇몇 사람은 통쾌해하며 박수를 치기도, 환호하기도 했다. 남성이 발언을 마치고 내려가자, 무대 부근이 어수선해지며 시민들이 진행팀에게 뭔가 항의를 하는 듯했다. 다시 무대에 오른 진행자는 시민 몇 분이 좋은 의견을 주셨다며 “우리가 대통령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위치를 망각한 채 권한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면 대통령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탄핵 요구를 받아야 합니다. 그를 여성으로 지칭하는 순간, 여성이니 봐주어야 한다거나, 여성이라 능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본질을 벗어난 논의로 흐르고 맙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부터라도 성을 구별하여(Gender) 비하하는 호칭조차 사용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다. 광장 전체에서 ‘맞습니다! 좋습니다!’ 라는 함성이 울려 나왔다.

이때 아하! 하는 새로운 배움을 하게 된 사람이 방금 전 발언을 마친 남성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민의 목소리는 ‘여성 혐오’니 어쩌니 하는 거창하고 어려운 논리를 불식시키고 무엇을 논의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광장은 한 마디로 ‘배움의 자리’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한 것은 무엇보다 ‘대통령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인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에는 시민의 일부만 그런 질문을 품다가 그 배움이 확산돼 시위 현장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시민들조차 가족들의 손을 잡고 그 질문에 동참했다. 이런 광장의 배움 덕분에 국정 농단 실체들이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고, 세월호도 기나긴 3년의 시간을 헤치고 뭍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일은 광장에서의 배움을 퇴색시키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며 어리석은 리더에게 국정 운영을 맡길 때 우리 일상이 얼마나 큰 폐해를 입게 되는지를 확인한 만큼, 이제 정치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출하는 일이 도전 과제로 우리 앞에 놓였다. 가톨릭교회도 대선 후보들에게 생명과 인권, 인간 노동, 경제생활, 정치 공동체, 생태 보호, 평화 증진 등 6개 분야에 관한 정책 질의를 보내며 어느 후보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맞는 정책을 펼칠지 검증에 나섰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크게 배운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시민의 소중한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4-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필리 4장 5절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