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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통합의 아일랜드 영성 / 윤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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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세 분의 아버지가 있다. 낳아주신 아버지, 정신적인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삶에서 이분들에게 예의와 의무를 다하는 일이 화합과 구원의 반석이다. 파릇파릇하지 못한 청년의사 시절에 정신적인 아버지를 만나게 됐다. 아일랜드에서 오신 신부님이셨다. 그분은 따르기 힘든 여러 가르침을 주셨다.

“아일랜드도 분단과 내전을 겪은 동병상련의 나라다. 너도 민족화해와 통일에 한 번뿐인 일생을 바쳐라. 세상을 보수와 진보의 두 개의 눈으로 바라보라. 더해서는 역사는 보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미래는 진보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그러면 더 나은 미래로 날 수 있는 지혜의 날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철없던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잡혔다. 어리석음을 간파하신 신부님은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알려주셨다. 언젠가 네 분야에서 ①일을 가장 많이 해라 ②세금도 제일 많이 내라 ③하지만 가장 가난해라. 이것은 중세의 구원자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이란다. 모든 사람이 이 길을 따르면 화해와 평화로 이어진다. 반대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면 반목과 갈등은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가 기쁘게 그 길을 따라서 가겠는가? 멀고 험할뿐더러 쓰러지고 낙오되기도 쉬운 길이었다.

아일랜드에는 ‘사과나무는 겨울에 자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진 고난과 역경을 담아내야 구원에 이른다는 뜻이다. 철학자 에라스무스 신부는 ‘신성한 강은 거꾸로 흐른다’고 했다. 시련을 영혼 속에 녹여내며 통속의 가치에 대항해 거슬러 올라가는 삶! 그것이 바로 패배주의를 이겨내고 더 큰 역사를 만들어내는 아일랜드인의 가톨릭영성이다. 보통사람들은 쉬운 일도 ‘어찌 그런 일을!’ 하며 회피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은 ‘안 될 게 뭐 있어?’라며 아무도 꾸지 못한 어려운 꿈을 현실에서 재현해 간다.

그들은 ‘하얀 흑인’이라고 불리며 10세기 동안 영국의 핍박과 멸시를 견뎌내야 했다. 더군다나 헨리 8세 이후 영국국교는 성공회여서 그 오랜 신산을 통해 천주교신앙은 깊어져만 갔다. 해방에 이은 내전 후 아일랜드의 에이먼 데 발레라 초대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무리하게 하기보다는 우리의 천주교 전통과 인문정신을 더 간직하자’고 국민들을 다독이며 위대한 통합을 이뤄냈다. 만약 경제를 우선시했다면 분열과 갈등의 재발은 뻔한 일이었다. 종교와 예술을 중시했기에 더 큰 역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 지도자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훨씬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됐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천천히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됐다. 우리는 너무 빨리 자랐다. 그래서 급속한 과잉성장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앓고 있다. 남북통일을 논하기 전에 먼저 남남갈등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대로 살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똑바로 실천해야 한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적 노력에 의해 아주 천천히 온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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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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