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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프란치스코 교황처럼(박현도, 스테파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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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따스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늘 흔든다. 이토록 세상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로마 주교가 도대체 언제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 들 정도다. 말 한 마디, 손짓 하나하나가 배려로 가득 차 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가장 무슬림 친화적인 교황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교 신자들에게 따스하게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예멘 난민 사태 홍역을 치르면서 무슬림 기피를 넘어 혐오 발언이 인터넷을 휩쓸던 상황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교황의 무슬림 껴안기는 따스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품는 그리스도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게 더 합당하다.

현대 세계에서 무슬림과 관련해 늘 제기되는 문제는 ‘난민’과 ‘극단주의’다. 교황은 난민 문제를 종교를 넘어선 인간애의 문제로 이해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도 난민이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아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국적과 종교에 상관없이 난민 모두가 인간 존엄성을 보장받고 희망을 지니며 살 수 있도록 유럽 각국이 난민정책을 시행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미 「복음의 기쁨」에서는 “이슬람 전통의 나라들에서 자기 나라에 온 무슬림 이민들을 우리가 바라고 요구하는 그대로 애정으로 감싸주고 존중해야 한다”며 신자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따라서 신자라고 자처하면서도 난민들에게 마음을 닫았던 적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이슬람교 신자 중 일부는 자신들의 믿음에 바탕을 둔 세상을 만들고자 극악한 폭력을 휘둘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아이에스(IS)가 대표적이다. 지난 부활절 일어난 스리랑카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인 이들 때문에 사람들은 ‘이슬람’과 ‘테러’를 동일어로 인식한다. 그러나 교황의 생각은 다르다. 테러의 원인을 이슬람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교황은 이슬람교와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이 폭력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교황이 보기에 폭력은 사람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경제 때문에 일어난다.

더 나아가 교황은 이슬람이 폭력적이라고 말하려면 가톨릭의 폭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슬람 폭력을 말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매일 이탈리아에서 신문을 볼 때마다 폭력을 보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자 친구나 장모를 죽였다는 기사를 읽는데, 살인자는 폭력적인 가톨릭 신자들이다.”

교황은 “모든 무슬림이 폭력적이지 않고, 모든 가톨릭 신자가 폭력적이지 않다”는 걸 강조하면서 “모든 종교에는 항상 소수의 근본주의 집단이 있다. 우리도 그러하다”고 고백한다.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당부한 바 있다. “폭력적 근본주의의 불안한 사건들에 직면하여, 우리는 참된 무슬림에 대한 애정으로 적대적인 일반화는 삼가야 합니다. 진정한 이슬람교와 꾸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온갖 폭력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민과 테러 때문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곱지 않다. 그러나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멋진 교황과 함께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하는 하는 아름다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더 늘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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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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