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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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죄란 무엇인가요?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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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파아란 저 하늘이 더 파래지고 과수밭 열매가 절로 익는다. 과수밭 열매가 절로 익는다.” 초등학교 시절 동무들과 한 목소리로 부르던 동요가 입안에 맴도는 요즈음입니다. 선생님 풍금 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마당 한구석을 하양, 분홍으로 물들이던 봉숭아들은 이제 다 스러지고, 진노랑 금계국 꽃이 가녀린 줄기 끝에서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여름방학 때 대자리 깔고 누워 온종일 ‘세계 명작’ 고전소설들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도 그립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열심히 읽고 있을까요.

‘죄와 벌’의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입니다. 그는 젊은 치기에,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사람을 등쳐먹는 ‘벌레’인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건 죄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사람을 죽이고 난 뒤에는 엄청난 공포와 자책감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순결한 마음씨의 쏘냐라는 창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사랑에 감화돼 벌레 같은 노파도 존엄한 인간이라는 깨달음을 얻지요. 결국 회심을 하고, 유형(流刑)을 간 시베리아의 차가운 대지에 입을 맞추며 진심으로 제 죄를 자복해 큰소리로 외칩니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요즈음 전 남편을 죽이고 잔인하게 사체를 나눠 여기저기 버린 30대 여자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재혼 생활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것도 그렇고, 제 행동에 별 죄책감이 없어 보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편 그를 빨리 사형시키라는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벌레’를 처단한 라스콜리니코프 처럼, ‘정말 인간도 아닌’ 저 여자를 빨리 처형하는 게 정의를 실현하는 걸까요.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합니다. 아니 그냥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형법 같은 하위 법률이 여기에 위배되면 위헌 무효가 됩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착한 사람만 존엄한 게 아니라, ‘죄와 벌’의 벌레 같은 노파도, 그를 죽인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리고 회개를 모를 것 같은 저 잔인한 살인범 30대 여자도 다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종교의 스승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당의 봉숭아며 하늘을 나는 새 그리고 강이며 산이 모두모두 다 일체요 형제자매라 가르칩니다.

이러한 헌법과 종교의 가르침 안에서는 아무리 살인범이라도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되고, 매일매일 소, 돼지, 닭이며 물고기를 죽여 먹이로 삼는 것도 죄에 해당되는 일이겠지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죄에 대한 대목을 인도의 철학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라다크리슈난은 이리 해설합니다.

“죄란 그저 계율이나 율법을 범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개체들의 유한성’, ‘무지’ 그리고 ‘자신의 자아가 다른 것들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여기는 확신’이 바로 죄다.”

개체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체들에 대항해서 자신을 주장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유한성이 죄입니다. 그런데 곰곰 따져 보면 이 개체는 생존 자체가 다른 개체들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걸 모르고 저만 저라고 주장하니 무지와 자기중심성이 죄라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본래 아름답고 여전히 하느님의 귀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폭력, 분열, 충돌 그리고 전쟁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자비의 교회」 266쪽)

개체인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운명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절제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회를 지키기 위해 살인범을 처벌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 그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그만두고 대체형벌을 찾을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깨도 유한성이란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기주의라는 죄에서는 한번 벗어나 보겠다고 발버둥 쳐야 하지 않겠나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 (요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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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8-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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