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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답다(정석, 예로니모,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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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명함에는 이름, 직장, 연락처 말고 몇 가지가 더 담겨 있다. 책을 출간한 뒤, 뒷면에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 같은 책 표지를 넣었더니 홍보에도 꽤 효과가 있다. 앞면만 보고 지갑에 넣는 분들도 가끔은 있어 좀 섭섭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책 표지 말고 내 명함에 담은 또 하나는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다섯 한자다. 한자 아래에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답다’는 우리말 풀이도 함께 넣었다. ‘소다연강미’는 내가 만들어낸 말인데,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란 책 제목을 지금 우리 현실에 맞도록 고친 것이다.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란 부제로 1973년에 출간되어 그 당시 세계인들에게 널리 사랑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과연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답기는커녕 큰 것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슈마허는 이 책에서 이른바 ‘규모의 경제’로 얘기되는 큰 경제가 아닌, 작은 경제들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향해 멈출 줄 모르고 달리는 경제가 아닌 사람을 중시하고 자연 생태계를 존중하는 경제를 제안한다. 작은 것들이 모이면 더욱 건강하고 더 참한 인간중심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작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시민이 진정 원하는 참한 도시를 가지려면 도시를 새롭게 발견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도시가 그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주인인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담대하게 실천하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말과 행동으로 주인 역할을 하는 시민의 수가 늘고 힘이 모이면 그 힘은 막강하다.

두 권의 책을 내고 여기저기 초대받아 강연하면서 끝에 ‘소다연강미’ 얘기를 하곤 한다. 세상의 경제를 딱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공룡 같은 경제고 또 하나는 토끼 같은 경제인데, 대기업과 다국적 거대 자본들의 제품을 무심코 소비해준다면 공룡의 몸집이 저절로 줄어들 수 있을지 여쭙곤 한다. 마을 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같은 토끼 경제를 우리가 키워주지 않는다면 공룡들 틈에서 토끼들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지 여쭙는다.

아름다운 세상, 강자와 약자들이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소다연강미’에서 답을 찾는다. 수많은 작은 존재들이 서로 연대하고 저마다의 강점도 살리며 힘을 키운다면 마냥 약자가 아닌,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구의 절반을 서울과 수도권에 뺏기고 인구소멸 위기 앞에서 고투하고 있는 지방의 작은 도시들도 각자 생존을 넘어 뭉쳐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이 완주와 김제로, 익산과 군산과 부안으로, 다시 정읍과 고창과 순창까지, 내친김에 장수와 진안까지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짱짱한 대중교통이 구축된다면 이들 도시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모래알은 약자이지만 단단히 뭉쳐 한 몸을 이루면 더는 약자가 아니다. 작아도 많고 이어지면 강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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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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