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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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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성지에서 만난 사람 /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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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낮게 내려 앉아있다. 잠시 비가 흩뿌리다 멈춘다. 내가 탄 버스는 아마도 시속 100㎞ 정도는 달리고 있는 듯싶다. 나의 인생 속도는 어느 정도로 달리고 있는 걸까? 이 자동차를 타고 느끼는 속도는 아닐까. 어쩌면 더 빠를까? 쉬지도 않고 이 지점에 이르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외치지만 무엇 때문에 조급하게 살아야 하는가?

유난히 무덥던 여름이 조금씩 익어가는 가을에게 꼬리를 내린다. 더위가 어서 가기를 바라지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계절이 바뀌고 있다. 개미 쳇바퀴 도는 듯 짜여진 틀처럼 시간들이 흘러간다. 요일별로 계획대로 움직이다 보면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 그리고 일 년도 쉽게 지나간다. 어느 사이 돌이켜 보면 십 년도 그랬다. 알맹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빈 껍질이 움직이는 것 같다.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 안에 머물며 살아있다는 환희를 느끼는가. 순간을 헛되이 보내 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에 잠긴 사이에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도착했다.

성지에서의 미사는 더 거룩하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 솔뫼성지다. 전국 세 군데 성당에서 모여든 교우들이 반원형 계단식으로 된 야외 성전을 가득 메웠다. 솔바람이 시원하게 하늘에서부터 불어온다. 그분의 영이 가득한 것 같다.

세상을 떠난 친정 부모님의 기운이 맴도는 곳 충남 당진 합덕이다. 노년의 시기를 합덕읍에 사셨다. 아프다고 부르시고 의논할 일 있다고 부르고, 또 부르셨다. 칭얼대는 어린아이를 떼어 놓은 것 같던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더 외로움을 타셨다. 바쁘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지만 하루 지나면 또다시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꿈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 기분이 안 좋은 얼굴로 자주 나오셨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였는데. 내 어린 시절 미도파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예쁜 원피스를 사주셨던 아버지. 언니와 싸웠다고 회초리 꺾어 오게 하여 종아리 맞던 기억. 매 맞고 울고 있는 나를 무릎에 안고 달래주던, 대학에 입학하자 양식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정식 먹는 예절과 순서를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때때로 동대문운동장에 축구며 럭비 경기를 데려가시던.

좋은 점이 더 많았는데. 내 기억의 저장 공간이 고장 났는지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이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데 희생을 강요하면 힘 드는 마음이 두 배가 되나 보다. 인색한 희생정신 때문인가. 나에게 반문한다. 변명을 하자면 아이들이 한참 대학 입시 준비를 하던 때였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아들을 감당하기도 힘겨웠다. 친정에 가다 보면 솔뫼성지 팻말이 보여도 들러 볼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께 가기 바빴고 돌아오는 길도 그랬다. 십여 년을 지나다니기만 하였지 들러보지 못했던 마음에 품었던 곳이다.

들어서니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성지. 넓었던 아버지의 품 같다. 오래도록 기다려준 그리움이 묻어있다. 그때의 시절을 다시 산다면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낮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가랑비가 조금 내려 소나무 짙은 향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구석구석 살펴보며 마음에 저장하고 싶다. 슬로 시티를 꿈꾸며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을 잡아두고 싶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며 이곳에서 만난 아버지께 부족했던 마음에 용서를 빌어본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원한 안식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인숙(빅토리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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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0-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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