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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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삶과 죽음(나혜선, 요셉피나, 성가 가수·금속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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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cpbc 창작생활성가제를 통해 연을 맺어 20년 동안 친교를 나누던 친구를 잃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6월엔 꼭 보자던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영정사진 속의 친구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세상이 멈춰버린 듯했습니다. 나눠야 할 이야기도, 계획했던 일도, 위로해주고 싶던 친구의 상처 난 마음도 그 사진 안에 가둔 채, 하루하루 친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1주기를 맞아 생활성가를 함께하는 동료 선후배들과 추모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우리 곁을 떠난 친구가 주님 품에 들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추모 음악회를 통해서 그녀가 살아냈던 삶의 값진 유산들을 살피며 그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은사를 정확히 발견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삶을 살았고, 유작 음반을 통해 자신에게 주신 탤런트를 세상에 두고 떠났습니다. 그녀가 썼던 가사를 통해서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노래 틈 속에 그녀의 숨결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없는 친구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했습니다. 덧없음과 두려움, 연민과 아픔, 돌아봄과 깨달음이 내가 되고 친구가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 또한 부여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합니다. ‘요셉피나, 너는 지금 살아가고 있니, 아니면 죽어가고 있니?’ 친구의 죽음을 통해 나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죽어가고 있는가를 고민해 보게 됩니다.

어릴 땐 40대가 되면 완벽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든 일에 정답을 알고 옳은 결정을 하는 어른. 그런데 마흔다섯이 된 지금도 온전한 인간은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행했던 옳은 결정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며,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과 행동은 이미 나를 앞질러 가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주는 선물이 되기도, 아픔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옳은 방향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 자부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또는 세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짚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믿음과 행동이 죽어가는 선택이 아니라 살아가는 선택이길 간절히 바라고 청하면서, 무엇이 사람의 욕심인지 무엇이 사람의 희망인지 그 차이를 분별하길 청하면서요. 죽은 친구가 내 안에 살고 있고, 돌아가신 주님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듯 그 죽지 않는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훗날 우리 곁을 떠나 먼저 주님 품에 있을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면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가타, 나 잘 살다가 온 거 맞지?” 하얀 이가 모두 드러나도록 빛나게 웃으며 맞장구쳐줄 그 친구 얼굴이 오늘 참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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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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