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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친구 차동엽 신부에게!

추모글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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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와 사제단이 12일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에 마련된 차동엽 신부 빈소에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님! 차 신부! 무슨 일이야? 백지장 같은 얼굴을 하고 누워있지만 말아. 어서 일어나 책 쓰고, 사람들에게 달려가 웃음꽃을 피우며 신앙 강의도 더 열정적으로 해야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던 차 신부가 지금까지 해온 사목 활동을 필자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어떤지 안부를 물을 때면 “난 40세까지만 건강하게 살아도 하느님께 땡큐야!”라며 특유의 그 표정으로 웃어 보였지요.

차 신부를 처음 만난 건 19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였습니다. 우리 모두 20대 후반 나이였죠. 서울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신학교에 입학한 차 신부는 유럽으로 유학 온 신학생이었지요. 새내기 신부였던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이 사람은 평생 함께 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힘들게 공부 중이던 우리가 함께 대화할 때면 서로의 신앙과 심성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차 신부의 관심 분야와 교회에 대한 생각은 끝이 없을 정도로 풍부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인이었고 애국자였습니다. 연배가 비슷한 나와 차 신학생은 어느새 친구가 되었습니다. 빈에 머무르는 동안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은 나는 차 신학생을 매일 데리고 나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타지에서 배고프고 힘든 사람에게 밥을 사주는 것처럼 큰 애덕은 없다고 하지요. 헤어질 땐 꼬깃꼬깃 접은 용돈을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매번 사양하는 그에게 “나중에 다른 후배에게 대신 갚아요” 하면서 함께 웃곤 했습니다.

1988년 10월 29일 늦가을, 유럽에 머물고 있던 한국인 사제와 신학생들에게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전주교구 소속 김 안토니오 신학생, 인스브루크 알프스 산 등반 도중 실족사.”

그 신학생 나이는 28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몇 달 후 사제품을 받기 위해 귀국하려던 차였습니다. 그의 장례미사에서 차 신부를 만났습니다. 인스브루크 신학교 성당에서 한국의 가족이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채 장례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이국땅에서 차갑게 숨져간 한 젊은이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친구야, 추운 땅속에 너를 묻으려니 몹시 마음이 아프구나. 춥지 마라. 몇 달만 있으면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한국에 갈 수 있는데… 왜 험한 길을 나선 거니?”

동료 신학생의 울먹이는 고별사에 우리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는 그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여 년 전 똑같은 사고로 숨진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의 저자인 김정훈 부제 곁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묘지까지 가는 길에 차 신부와 함께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울고 슬퍼해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잊히겠지요?”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또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인생이 참 슬픈 거죠.”

우리는 그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하며 묘지에 꽃 한 송이씩 바쳤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았습니다. 유난히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그 하늘 끝으로 가면 거기에 어머니의 나라, 우리의 고향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위안 삼아 눈물을 삼켰습니다.

차 신부는 귀국해 사목과 강연, 집필 활동으로 무척 바쁘게 지냈습니다. 차 신부 저서 「무지개 원리」는 ‘한국판 탈무드’라고 불릴 정도였지요. 공중파 방송에서도 차 신부의 강연을 앞다퉈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차 신부를 일 년에 한두 번 잠깐 만나는 게 전부였는데도,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걸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건강이 안 좋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차 신부는 오래전부터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가을 차 신부를 떠나보내며 인간의 삶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존재의 근원 앞에서 한없이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네 인생은 가을날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죽음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현재의 삶을 더 값지고 은혜롭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나의 오랜 친구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는 그런 길을 충분히 달렸고, 많은 이에게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주님, 사제 노르베르토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노르베르토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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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1-1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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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5장 13절
주님께서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그 열매를 내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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