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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거룩한 얼굴(나혜선, 요셉피나, 성가 가수·금속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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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 공방을 운영하던 2015년 가을의 일입니다. 제품 디자인 샘플을 제게 의뢰하셨던 사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토리노 聖 수의(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 사본 전시회’ 준비위원회에서 봉사 중인데, 수의에 새겨진 예수님의 얼굴을 신자들이 소장할 수 있도록 ‘기적의 패’처럼 제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기존에 의뢰해 받아 본 샘플이 지도 신부님과 준비위원회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하셨지만,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이고 아마포에 새겨진 예수님의 얼굴 패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조언을 구하시기에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그런 결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저는 샘플 패와 이미지를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6개월 남짓 헤아릴 수 없는 수정을 거쳐가며 그 패를 조각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통을 한 조각의 패로 표현한다는 것은 제 얕은 신앙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시간들이 깊어지면서 제가 지은 죄를 외면하는 것이 주님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당 신부님께서 표현해달라 조언하셨던 ‘병사들에게 맞아서 부어오른 뺨’은 나의 손찌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은 저와 주님이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해가 지나고 봄이 왔으며,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으나 저는 여전히 사순 중에 머물렀습니다. 원본 디자인 확정 자리에서 “이제 다 되었다”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저는 오늘 비로소 부활을 맞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완성되어 세상에 나온 ‘거룩한 얼굴’ 패는 ‘토리노의 聖 수의 사본 전시회’에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 얼굴을 기억하시는 분들의 기도와 묵상 안에서 힘을 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제가 지은 죄의 못 자국들이 고스란히 저를 찌르는 순간이 존재합니다. 그 못 자국을 마주할 때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죄의 순간이 되살아나, 고통받으셨을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시간 속에 나를 돌아보고 머물며 십자가 앞에서 통회가 없었다면, 못 자국들이 나를 살리신 자리였음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깨닫는 것 또한 은총이라는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시간뿐 아니라 저의 시련도 간직하며, 주님의 거룩한 얼굴의 빛 속에 들어가 살아갈 수 있기를 오늘도 잊지 않고 청합니다.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소서.”(시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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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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