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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빠야따스’에서 - 1(양상윤 신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전교회 중화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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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제품을 받고 처음으로 간 곳은 ‘빠야따스’(Payatas)라는 곳입니다. 빠야따스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지역 이름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매립장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필리핀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빠야따스’라는 공식 이름 대신 필리핀 현지어로 ‘약속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루빵 빵아꼬’라는 자신들만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매립장이 생기면서 정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마치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듯 현재는 비록 쓰레기를 뒤져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고달픈 삶이지만 언젠가는 가나안과 같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신학생 때였습니다. 실제로 본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했습니다. 동네 뒷산만큼 쌓여있는 ‘쓰레기 산’. 한쪽으로는 계속해서 쓰레기를 매립하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집이라고 표현하기조차 힘든 거적때기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엉성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수도와 전기는 기대할 수도 없고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썩은 냄새와 가스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침출수가 만들어낸 더럽다 못해 시커먼 빛깔의 도랑물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물장난을 치고 있지만, 그것을 보고도 말리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탓이겠지요.

하지만 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이런 환경 속에서 이 사람들은 이제까지 살아왔고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제가 찾아갔던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마치 산사태처럼 쓰레기 산이 무너지며 집들을 덮쳐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이 결국 그 쓰레기더미에 묻혀 삶을 마감해야 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사제가 되어 이곳으로 자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길을 가다 동냥하고 있는 너무나 야위고 초라한 노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고 안타까워 하느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저 노인을 저렇게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하셨나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 놓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하느님이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세상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정서적,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의 대책이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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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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