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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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맹모(孟母)와 성모(聖母)의 교육 / 오세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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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여러분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자녀를 명문 대학 수시전형에 합격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합니다. 명문대에 입학해야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맹신하게 하는 ‘교육의 신화’를 ‘신앙의 신비’에 견주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열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예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동양의 성현인 맹자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가셨다는 이야기지요. 무덤가 옆에 살 때는 아이가 곡소리를 흉내내고, 시장터로 이사를 갔더니 상행위를 따라 해서 서당 옆에 가니 글을 읽게 됐다는 내용으로, 자식에게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지요.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맹모도 울고 갈 정도입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이사와 위장전입도 마다 않고, 수시전형을 위해 가짜서류를 만들어 내는 학부모들도 꽤 많다고 합니다. 또, 어떤 정치인은 자기 자식만을 위한 장애인 전형까지 새로 만들어 특혜로 입학시켰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국회에서 ‘민식이법’을 협상카드로 쓰는 위선적인 행태를 보여서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학부모들로부터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인’이라 비난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뭘 배웠고 뭘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기실 공부만 잘해서 남들보다 빨리 법관, 의사, 교수, 기업인이 되고 높은 공직으로 출세했지만 이웃의 아픔에는 눈을 감고 오직 자기의 성공만을 위해 살고, 또 다시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식들의 입신출세만을 추구하며 사느라 사람냄새 안 나는 ‘무책임한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지요?

교육과 배움의 목적은 참된 인간이 돼 가는(to become) 과정에 있는데, 오늘날 교육은 취직과 성공의 수단으로서 높은 지위와 많은 보수를 받는 직업을 소유하는(to have) 것만을 목표로 하는 듯합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 넓고 깊은 의미와 가치를 체득하지 않고 머리로만 하는 공부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에 매몰되기 쉽지요.

조선조 500년 이래 과거시험과 학력은 출세와 성공의 정도(正道)인 양 통용돼 왔기에, 가난하고 서러운 인생을 살아 오신 우리 윗세대 어르신들은 ‘단지 배우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한 한(恨)을 저마다 품고들 살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한 생을 마무리할 때는 배우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결핍이 아니라,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안타까운 삶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자신과 자녀의 학력이 어떻든, 우리가 한(恨)의 고리를 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사랑을 체험하고 나눌 수 있다면 그 믿음이 자녀에게 전해 주는 자존감은 그 어떤 명문대 학벌보다도 더 큰 삶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참된 교육과 배움의 목적은 ‘지식의 다발’을 머릿속 창고에 더 많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을 넓게 꿰뚫어 보며 자기 삶을 깊이 성찰하고 배울 수 있는 ‘지혜’를 익히는 과정 그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기실, 맹모의 교육은 두 번의 실패 후 세 번째에야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세 번의 ‘삶의 자리’ 모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맹자는 무덤가에서 인간 실존의 한계와 무상한 세속 권력과 지위를 꿰뚫어보는 ‘죽음의 역학’을 배우고, 장터에서는 사고팔고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치열하게 ‘삶의 역학’을 접하고 난 후에 학문을 통해서 인간 심성의 보편적 가치와 의미를 체득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모(聖母)는 예수를 잉태하셨을 때부터 한평생 신앙의 신비란 온전히 ‘하느님의 주도권’ 안에서 배우는 지혜임을 때론 치열하게, 때론 처절한 고통 안에서 배워 나가셨습니다.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루카 1,34) 인간적 앎의 차원을 넘어선 하느님의 주도권과 신비에 대한 내적 인식은 우리를 자기중심의 ‘한계적 앎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어린 소년 예수를 잃었다가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에도 성모는 말대꾸하는 어린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주도권’에 관해서 곰곰이 묵상하셨습니다.

학력은 높지 않으셨지만 살아 계신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고 지혜롭게 사랑을 나누셨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암투병 중에 제게 당부해 주셨던 말씀이 오늘도 무지하고 어리석은 저를 죽비처럼 깨워줍니다. “그까짓 박사학위 따위 없으면 어때요? 세상 사람들한테 인기 있는 신부 되려 하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한테서 인정받는 사제 되세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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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2-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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