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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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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넝마 이야기 / 조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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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쓰레기가 골칫거리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휴지조각 하나도 귀해서 그것을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에 집게로 집어넣던 넝마주이라고 불리던 직업이 있었습니다. 넝마주이는 70년대 국토건설단에서 직업훈련원 운영으로 건축·목공·기계 등의 인력이 증가하고 고령화 등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동네 야산에 있던 작은 동굴에 살았고 몸은 중풍 끼가 있어선지 언제나 덜덜 떨어서 우린 그를 덜덜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깨엔 언제나 작은 대나무 바구니가 메어져 있었고 손에는 큼직한 집게가 들려져 있었지만 그가 한 번에 휴지를 주워서 넣는 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가 탐스러워 그 동굴 주위를 기웃거렸지만 줄레줄레 널려 있는 빨래가지들이 얼마나 위협적이던지 멀리서 그 동굴 주위를 살피기만 했었습니다.

그에게는 지능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의 품속에는 늘 칭얼거리던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넝마를 주워서는 사는 것이 턱없이 부족한지라 언제나 구걸로 끼니를 잇긴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거지 취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특별한 음식을 해 먹으면 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나누었고 식은 밥이 아닌 밥솥에서 금방 퍼낸 따뜻한 밥을 나눌 때도 잦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끼니를 구걸하고 다녔음에도 거지 취급을 하지 않음은 그가 남다른 점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그는 얻어먹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구니를 메지 않은 다른 어깨에는 새끼줄에 줄러리 줄러리 달린 똬리(물동이나 광주리를 머리에 일 때 아프지 말라고 동그랗게 짚으로 만든 물건)를 늘 챙겨서 걸고 다녔습니다. 그 똬리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건넬 수 있는 유일한 답례품이었습니다. 별것 아니긴 했지만 정성으로 꼼꼼하게 만들어진 그 똬리를 받아 든 동네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동냥자루에 음식을 넣어주는 우리에게 언제나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이음질을 할 필요가 없었던 어머니께서는 그에게 받은 똬리를 마루 기둥에 하나둘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지금 가만히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도 자신의 고마움을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찾아 표시하려고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남의 신세를 지고도 당연한 걸로 알고 고마운 일이 있어도 고맙다는 말을 아끼고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 치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도 이웃의 친절을 부담스러워 까지 하는 우리의 현실이 가끔 살면서 그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저를 부끄럽게도 합니다.

가지가 찢어지게 밤이 열리는 계절이면 동냥 그릇에 햇밤을 담아 동네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주던 선량한 그의 눈빛도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넝마와 동네 사람들 어머니의 마음을 닮아 우리 서로 아끼고 위로하며 보듬어 주는 주님 안에서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장미꽃 같은 화려함의 옷을 벗고 자주색 제비꽃처럼 소박한 겸손의 옷으로 갈아입어 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육현(미카엘)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2-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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