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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베트남에서 발견한 나의 고향 / 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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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 설 명절을 보낸 곳은 베트남 남서부의 시골 마을(V? Thanh)이었다. 베트남어를 못하는 내가 통역 없이도 2주씩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땀베(t?mb?)와 마이(Mai)씨 부부의 친절한 배려 덕분이다. 메콩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촌의 설 풍속을 연구하기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간 것은 외적 명분일 뿐, 그 가족과 만나는 것이 더 행복했다.

2년간 200여 명을 만났으나, 번역기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땀베와 마이씨 부부를 포함하여 3명뿐이었다. 휴대폰을 활용하여 대화하려면, 잦은 번역 오류를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씨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아들 친구들의 파티 때였다. 한 친구가 마이씨에게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얘기를 2시간 넘도록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상담사의 자세가 저러할 것이라고 경탄했다. 마이씨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는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려면, 대화의 맥락을 재빨리 파악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마이씨는 말의 행간을 헤아리는 놀라운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대화는 늘 유쾌했다.

그의 집은 한국의 거실을 닮은 제단이 있다. 조상이나 신을 모시는 제단과 거실이 통합한 공간이다. 이곳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 앉을 수 없는 신성성이 깃들어 있다. 거실 제단은 어려서부터 자녀의 예절 교육을 내면화하는 장소로 기능한 셈이다. 물론 부모와 함께 앉을 수 있는 거실은 다른 방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베트남 사람은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는 예절을 지키고 있었다. 부모 혹은 노인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코완따이(Khoanh tay) 예를 갖췄다.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 노인을 공경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예절은 제단 거실과 코완따이를 통해 내면화되었다.

마이씨는 끼니마다 나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제공했다. 정갈하고도 맛깔난 그녀의 음식에 매료되어 과식하곤 했다. 더 잊지 못할 것은 부부가 옆에 앉아서 밥을 한술 뜰 때마다 내게 반찬을 얹어주는 행위였다. 사랑스러운 자녀의 밥 위에 반찬을 건네는 어머니의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끼리 인정을 나누는 행위를 밥상에서 가장 진하게 느낀 셈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하는 땀베와 마이씨 부부는 참으로 부지런하다. 마을에서 해먹이 없는 유일한 집이라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 마을에서 두 시간 거리 내의 모든 집을 방문했었는데, 집집이 여러 개의 해먹을 두고 있었다. 해먹이 없는 그의 가족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이씨는 해먹에 누워 흔들면 머리가 아프다면서, 게으른 삶을 질책한다.

휴대폰 카메라로도 별이 선명하게 찍히는 밤하늘이 아름다운 집을 잊지 못한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논이 둘러싼 집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는 나에게 자신의 침대를 내어주던 아들(Hoang Kha)이 있다. 그는 날마다 손으로 나의 옷을 빨았다. 또 그곳에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애교 만점의 딸(Ng?c th?y)도 있다. 베트남의 커피는 그들만큼 정말 달달하다. 커피로 유명한 강릉시에서 살면서 절로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땀베와 마이씨의 아들과 딸이 가져다주는 커피 맛이 으뜸이다.

그들은 날마다 물었다. “즐거우세요?” 늘 나를 배려하던 그 집을 떠나던 날 택시 안에서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이별하는 아픔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한국인에게 많다던 정(情)을 타국에서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나의 마음은 아직도 그의 집에 머물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연수(요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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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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