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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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함께 오르는 산(안현모, 리디아, 동시통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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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박 4일 일정으로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촬영차 내려간 김에 조용히 혼자 글도 쓰고 휴식도 취할 겸 며칠 더 머무르다 왔지요. 내려갈 때는 꽤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습니다.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건강을 충전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나 서울로 돌아올 때는 쫓기듯 걸음을 재촉하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텅 빈 시외버스에 마스크로 무장하고 앉아 시계만 보며 도착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새 온 나라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바뀌어, 힐링은커녕 오로지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예상치 못한 마무리였죠.

인생을 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아름답고 단정하게만 보였던 산이 막상 입산해 보면 갑자기 돌부리가 툭 튀어나와 발을 찌르기도 하고, 움푹 파인 구덩이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하듯, 인생도 실제로 살아보기 전까진 앞날을 속속들이 알거나 예측할 수가 없죠. 그래서 마치 제가 강원도 여행을 처음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마쳤듯, 인생의 여러 산도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하산하게 될지는 감히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정상에 올라 힘차게 ‘야호’ 하고 외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올 수도 있고, 다시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헐레벌떡 도망쳐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것이 쉬운 등산이든 힘든 등산이든, 우리가 그 산을 오를 때는 늘 하느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는 특별히 더 어렵고, 낯설고, 위험해 보이는 산행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그분은 분명 우리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펼쳐질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감히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인간의 시야는 그저 한정적일 뿐이지만, 그럴수록 주머니 속 신앙이란 나침반을 꼭 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등반은 나 하나가 아닌, 너무나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같은 산과 분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각자 따로가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헤쳐나가라는 뜻은 아닐지 헤아려봅니다. 자주 단절돼 있고 갈라져 있던 우리에게, 이번만큼은 잠시 같은 비를 맞고 같은 흙을 밟으며, 서로 동반자가 되어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넘어진 형제자매에겐 손을 뻗어 주고, 물에 빠진 형제자매에겐 나뭇가지를 내어주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혹여 빗줄기가 너무 사나워서 때로는 뿔뿔이 저마다의 동굴 속에 몸을 피해야 할지라도, 결국엔 모자란 물리적 접촉의 자리를 정서적 교감이 대신하고, 무엇보다, 부족했던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 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커다란 산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시는 하느님. 그분의 발뒤꿈치만 보며 길을 잃지 말고 따라가기로 결심합니다. 자세히 보면, 발밑에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어느덧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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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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