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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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산책길의 화살기도 / 장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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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청매화도 산수유도 핏기 없는 종이꽃처럼 메말라 보인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사람들을 만나 수다 떨고 영화 보고 전시회를 관람하던 소소한 일상들을 자제하고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민자치센터 요가반은 3월 말, 난타반은 4월 말까지 휴강이라는 문자도 받았다.

무거워진 몸과 마음에 울적해져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집을 나선다. 석촌호수로 갔다.

팔다리를 힘차게 움직여 빠르게 걷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활짝 열리고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다.

주변이, 나라가, 세계가 모두 무탈하고 평온하고 평범했던 나날들이 그동안 얼마나 소중하고 복된 일상이었는지를 잊고 살았다.

이 어수선한 환란 중에도 혼자만 무사하다고, 홀로 편히 잘 먹고 잘 지낸다고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불안하게 저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부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촘촘하게 그물망으로 연결된 한 몸이며 한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온갖 증오와 편견의 시선들을 거두어야 한다.

이토록 어지러운 시기에 혼신으로 애쓰시는 관계자분들과 자신도 모르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갇힌 분들, 꽁꽁 얼어붙은 지역경제의 위축으로 생존에 큰 어려움을 겪고 계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서 빨리 이 모든 지난한 상황들이 무사히 말끔하게 종결되기를 기도하며 걷는다.

호숫가를 산책할 때마다 마주치는 저 민트 색 피아노는 재잘재잘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엄마랑 나란히 앉아 뚱땅거리며 놀기도 하고 어쩌다 아주 운이 좋은 날엔 놀랍도록 멋진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와 황홀해지곤 했었는데 동호와 서호 사이에 놓인 저 피아노가 오늘은 시절 때문인지 홀로 우두커니 적막하다.

엄동의 추위마저 녹아내리면 저절로 봄은 오듯이 코로나19도 혐오와 증오와 편견의 바이러스도 머지않아 씻은 듯이 이 땅에서 물러갈 것을 믿는다.

머지않아 훈풍이 불어와 호숫가 수양벚나무마다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면 어여쁜 아이들 눈부신 웃음소리도 햇살 따라 환하게 달려 나오고 호숫가를 거니는 우리에게 감동과 행복을 선물하던 피아노연주소리도 다시 들려올 것이다.

호숫가를 돌다가 헐벗은 벚나무 가지 위에 위태롭게 자리한 새 둥지에 시선이 가닿는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슨해진다.

어디선가 실컷 놀다 돌아온 까치들이 가로세로 소란하게 서로 장난치며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와 앉는다.

부럽다 문득, 우리도 어서 저 새들처럼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혹독한 겨울을 견딘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부활의 봄날이 환하게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할 것을 믿는다.

지는 해가 쏜살같이 달아나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가던 길 어서 묵묵히 가라며 등을 떠민다.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 환한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글썽글썽 눈시울 붉히며 걷는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진숙(엘리사벳)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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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3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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