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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최악 아닌 차악 / 황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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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연구할 때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은 북한의 내부 정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부 정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국회 회의록이 공개되거나 청와대의 언론브리핑과 같은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북한과 같이 내부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정치체제를 연구하는 방법은 공식적인 기관지의 행간을 치밀하게 분석해 유추하는 ‘크렘린놀로지’(Kremlinology)가 활용된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냉전 시대 서방에서 모스크바 크렘린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굳이 북한 연구의 고전 방법론까지 언급하는 것은 북한의 행위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지난 한 달, 북한이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남한 정부와 지도자를 대상으로 말폭탄을 던진 현상에 여러 추측과 의견이 오고 갔지만 사실 직접적인 동기와 목적을 콕 짚어 말하기 조심스럽다. 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나섰는가, 왜 현 시점인가,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북한 체제 안정성에 대북 삐라가 그렇게 민감한가 등 여러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 중 무엇 하나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북한을 상대하는 일에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미국, 북한의 우방인 중국마저 어렵다 하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쨌거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류(?)로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계획은 보류됐다. 영상으로 본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은 참담했다. 그럼에도 내가 본 희망은 험악했던 북한발 담화와는 달리 재산상 손해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절대 북한의 행위를 두둔하는 게 아니다. 연락사무소에 투입된 170억 원 가량의 예산이 먼지처럼 사라진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번에는 사람이 다치거나 숨지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반도를 가르는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의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좋았던 시기보다 안 좋았던 시절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그 수 많은 여러 사건·사고 중 최악의 상황에는 속하지 않는다. 어떤 의도 간에 북한 역시 최악은 선택하지 않았다.

냉전 시기 한반도에 일어난 여러 사건·사고와 현재를 비교하면 여전히 투덕거린다고 하지만 남북관계는 분명 나아지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10년 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을 때와 5년 전 DMZ에 목함지뢰 사건과 비교해도 남북관계는 느려도 꾸준히 장기적인 ‘우상향’ 중이다. 지난 6월 한반도 이슈를 보며 남북관계에 그동안의 노력이 의미 없었다고 비판하기보다 최악과 차악 사이의 미세한 차이에 주목하길 권유해 본다. 이 차이에서 희망을 기대하고 다시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는 단련을, 그리고 단련은 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로마 5,4)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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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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