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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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성경 읽기와 성령의 도우심 / 신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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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성경을 완독했다. 구약 창세기 첫머리부터 신약 요한 묵시록 마지막 장까지 다 읽는 데에 무려 여섯 달 남짓한 기간이 걸렸다.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더디고 무뎌진 독파력 탓에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무진 애를 먹었다.

본당에서 받아온 ‘매일 성경 읽기 표’에 빗금을 그어가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그런데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정신이 잘 집중되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산만해져 처음엔 나이 탓이려니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닌 성싶었다. 시선은 활자의 숲속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매고, 마음에는 의혹과 의심의 그늘이 넓고 짙게 드리워지는 게 아닌가.

지난해 여름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입원 가료 중에 직장마저 그만두고 나서, 퇴원 후엔 심한 우울증까지 겹쳐 무척 힘들어하는 나에게 성경 완독을 권한 사람은 아내 마리아 도미니카였다.

평소 비록 작은 선행일지라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아내의 신심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터여서 이번에도 그 애정 있는 권면에 큰 용기를 얻어 성경 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진행 속도는 한없이 더딜 뿐만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무거워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구약에 묘사된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민족 신이지 과연 인류 보편의 하느님이신가 하는 의심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구약시대의 그 하느님이 대륙의 먼 끝 한반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 태평양 또는 대서양 저쪽 미지의 땅에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 아내는 내게 마치 불교 선방의 죽비 소리 같은 말로 깨우침을 주는 게 아닌가.

“성경을 세속의 눈으로 읽지 말아요! 현대인의 상식에 얽매이지 말고, 성경이 쓰여진 그 당시로 돌아가 그때 그곳 사람들의 믿음으로 읽어야지요.”

너무나 기초적인 신앙의 일깨움이었다. 성경을 읽는 중에 의혹이 생기거나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아내의 충고와 조언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곤 하면서 마침내 생애 첫 성경 완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신약 성경은 지난날 이미 열한 차례 읽은 바가 있다.)

영세한 지 60년이 다 되어서야 이룬 일이라 기쁨 또한 크다. 성경 필사를 몇 번씩 하신 교우 분들께는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여섯 달에 걸쳐 성경 읽기를 하는 동안 나의 건강이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점이다. 온갖 잡념과 망상들이 괴롭히던 우울증도 거의 해소되어 숙면을 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해주심으로써 성경 완독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 같은 건강상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만약 성경이 성령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쓰인 것이 아니라면, 한갓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재미에 있어서도 「그리스 신화」나 「플루타크 영웅전」 또는 「삼국지연의」 같은 책들보다도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 성경 읽기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구원의 기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찬식(미카엘) 시인·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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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7-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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