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신앙단상] 낯선 풍경 속에 피어나는 동지애(정다운, 프란체스카, 방송 작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미사를 드릴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다 함께 ‘대영광송’을 부를 때입니다. 대영광송은 아시다시피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의 본기도 바로 앞에 노래나 낭송의 형식으로 함께 바치는 찬미가인데요. 사제와 성가대를 비롯한 교우들이 주고받는 부분이 있어서,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마치 노래로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를 만드시고, 구원하시고, 이끄셨던 하느님의 영광과 승리를 노래하고, 여러 가지 기도가 모여 하나의 찬미를 이루기 때문에 전례 중 가장 활기찬 성가가 대영광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그래서인지 이 거룩하고도 영광된 대영광송의 첫 소절을 선창하시는 신부님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중후한 음색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일, 음 이탈이 날까 봐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스타일, 공기 반 소리 반의 안정감 있는 스타일 등 다양합니다. 신부님의 선창을 받아 그 뒤를 잇는 2층 성가대의 아름다운 하모니도 본당별로 개성이 다 달라 이걸 찾아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대영광송을 부를 때 남모르게 ‘화음 쌓기’를 시도하는 것이 미사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1층의 고독한 성가단원’이지만 3도 화음을 높게도 쌓아봤다가 낮게도 쌓아봤다가 다양한 실험을 해봅니다. 어떤 날은 만족스러운 화음을 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혼자만 튀는 불협화음을 내고는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한 가지 순기능을 꼽는다면(순전히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앞뒤 좌우 ‘평화의 인사 zone’에 계시는 신자분들께서 신기한 화음 자매 1명의 효과로 한껏 더 큰 목소리로 성가를 함께 부르신다는 겁니다. 마치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함께 힘차게 성가를 불러보자꾸나’라고 결의를 다지는 동지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당연히 여겨지던 일상이 무너지고, 성당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두 달 만에 재개된 미사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는 시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2m의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낯설었던 주일의 성당 풍경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봅니다. 성가가 낭송으로 대체된 미사는 예전보다는 단출해졌지만 엄숙해졌고, 신자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그리고 본당 교우분들은 정말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도 잘 안 보이지만 따뜻한 눈인사 속에 서로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신기한 화음 자매와 함께 힘차게 성가를 불러주었던 저의 앞뒤 좌우 자리 ‘평화의 인사 zone’ 교우들에게서 느끼던 동지애를 바뀐 성당 풍경 속에서도 찾아봅니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삶도 3도 화음처럼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의 연속! 지금의 시기를 ‘결핍’으로 인한 아쉬움으로 탓하기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배워가는 자세로 생각한다면 한결 여유로워지지 않을까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7-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이사 6장 8절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