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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이문수 신부, 청년밥상 문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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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조용히 묵상하며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치 책상물림 같달까요. 부끄럽지만 제 성향은 입으로만 떠들기 좋아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사리지 않고 봉사하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런 제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기이하네요.

저는 정릉시장 안에서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실 수 있는 식당이지만 무엇보다 주머니가 가볍기 마련인 청년들이 부담 없이 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저희 글라렛 선교 수도회에서 설립했답니다. 2015년 여름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고에 굶주림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청년에 대한 뉴스가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습니다. 가슴 아픈 뉴스를 접하신 전교 가르멜 수녀회의 강 세실리아 수녀님께서는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저에게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 아닌 제안을 하셨습니다. 저 또한 안타까운 뉴스에 가슴 아파했었기에 수녀님의 제안에 공감했고, 그날 저녁 수도회의 신부님들에게 전했더니 모두 찬성하셔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회는 저를 가칭 ‘청년 식당’의 책임자로 임명하였고 저는 험난한(?) 장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죠. 그렇게 시작된 식당은 2017년 12월에야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느긋함이라 포장하는 저의 게으름과 책상물림 같은 기질로 인해 준비 시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식당을 시작하고서 뜻하지 않게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언론과 인터뷰라는 것도 했고요. 어느 기자님께서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고 청년들을 많이 생각하셨느냐고 질문하셨는데, 문득 ‘내가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밝힌 대로 저는 몸을 쓰기보다는 입만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성향대로라면 관구장 신부님께서 청년 식당의 책임자로 임명하셨을 때 자연스레 거절했을 테니까요. 식당 일이란 게 할 일이 태산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 홀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관상 생활을 원하셨다고 합니다. 반면에 클라라 성녀께서는 만방에 두루 다니며 복음 선포를 바라셨다고 하죠. 그러나 우리들이 익히 아는 대로 두 분은 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 이끄신 것이죠. 감히 두 분의 삶에 저를 비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제가 좋아하고 익숙한 삶에 놔두시지 않고 반대의 삶으로 내몰으신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 짐작조차 못 했던 코로나19의 세상을 보낸 우리에게 올해 주님께서는 무엇을 마련해 놓고 계실까요. 확실한 것은 제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만 준비하시진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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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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