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부는 원주교구가 설정된 직후인 1965년 12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원주교구의 맏배다. 1965년 원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상동ㆍ원동ㆍ남천동ㆍ일산동ㆍ함백ㆍ북평ㆍ사직동ㆍ영월본당
주임을 거쳐 1984년부터 1991년까지 교구 총대리로 재임했다. 이후 성내동ㆍ태장동
주임을 거쳐 용소막 주임으로 본당 설립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후 2006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신학생 때부터 불린 ‘감자바위’라는 별명처럼 이
신부는 느긋한 성격의 전형적인 강원도 사람이라는 평을 사제단과 신자들로부터 받았다.
탄광촌 사람들과 석탄 가루가 깔린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목하던 젊은 시절이나, 본당
주임과 교구 총대리로 고 지학순 주교를 도와 사제직을 수행할 때나,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무기한 단식기도를 할 때도 그는 늘 느긋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과 동료 사제들을 챙겼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31일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기념 대성당에서 거행되며, 고인의 유해는 배론성지 성직자묘지에 묻힌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