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살레시오회 수련장 17년 역임, 공동체의 존경 받아
전례주년의 정점인 파스카 성삼일이어서 장례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게 돼 서울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대성당과 광주 신안동 수도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매시 간 연도를 바쳤고, 성 토요일인 16일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대성당에서 장례예식을 거행했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톨릭대 의대에 기증됐으며,
추후 화장을 거쳐 담양 천주교묘원 내 살레시오회 묘역에 안장된다.
1932년 미국 위스콘신 주 북동부 브라운군 그린베이에서
태어난 노 신부는 살레시오회에 입회, 1955년 첫 서원을 하고 1956년 11월 선교지
한국에 파견돼 수련을 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1955년 전남 광주에 첫 살레시오
공동체가 탄생한 터여서 전후 한국은 무척 가난했고 모든 게 부족했지만, 노 신부는
1959년 9월 이탈리아에서 종신서원을 하고 1963년 2월 11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사제품을 받자마자 장상에게 요청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어 1966년 광주 신안동
수도원장, 1970년 광주 살레시오중학교 교장을 거쳐 1973년 제2대 살레시오회 한국지부장을
역임했다. 이어 1979년 수련장을 맡았고, 1990년 서울 대림동 수도원장을 거쳐 1992년에
다시 수련장을 맡았다. 1992년 대전 정림동 수도원 초대 원장을 겸임했고, 2003년에는
중국 연길 수도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 광주 신안동 수도원의 영적 지도 소임을
거쳐 2019년부터 서울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거주해 왔다. 한국 살레시오회의 수련장을
17년이나 맡았을 정도로 한국 살레시오회 공동체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고, 살레시오
협력자들과 봉사자들에게도 삶의 모범이 됐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 최원철 신부는 “노숭피 신부님은 말뿐 아니라 삶으로, 모범으로, 실천으로 가르쳐주신 우리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의 영적인 아버지셨고, 큰 별이셨으며, 살아있는 성인과 같은 분이셨다”면서 “우리가 돈 보스코 성인을 볼 수는 없지만, 돈 보스코라면 이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분이 바로 노숭피 신부님이셨다”고 추모했다. 이어 “신부님이 돌아가셔서 정말 슬프고 마음은 아프지만, 성주간에 신부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다”면서 “부디 신부님께서 하느님 품 안에서 영면하시기를 빈다”고 애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